문화·스포츠 문화

리움이 10년이상 발효한 고풀로 '보물급' 안중근 유물 손본다

삼성문화재단, 안중근 독립운동유산 보존처리

가족 사진첩과 유묵 2점 내년 3월까지 복원

10년이상 발효한 리움産 '고풀' 이용해 배접

"예산 부족한 독립문화유산 보존에 노력"

안중근 의사의 부인 김아려 여사와 두 아들 분도(오른쪽), 준생의 가족사진. 안 의사는 사형 직전까지 이 사진을 수없이 꺼내봤고 그 바람에 닳고 해진 사진첩을 삼성문화재단이 보존처리하기로 했다.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안중근 의사의 부인 김아려 여사와 두 아들 분도(오른쪽), 준생의 가족사진. 안 의사는 사형 직전까지 이 사진을 수없이 꺼내봤고 그 바람에 닳고 해진 사진첩을 삼성문화재단이 보존처리하기로 했다.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




1909년 10월 만주 하얼빈에서 대한제국 침탈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1879~1910) 의사. 안 의사는 하얼빈 의거 직전, 부인 김아려와 세 자녀를 하얼빈으로 데려와 달라고 동지에게 부탁했다. 김 여사는 큰딸을 명동성당 수녀원에 맡기고, 두 아들을 데리고 나섰으나 의거 바로 다음날 하얼빈에 도착하는 바람에 안 의사와 상봉하지 못했다. 한복 차림의 가족을 수상히 여긴 일본경찰이 연행해 갔다. 눈치 빠른 김 여사는 조사관에게 안중근을 모른다고 했으나 큰 아들이 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아는 척 해 가족임이 탄로 났다고 전한다. 이 젊은 부인과 두 어린 아들을 촬영한 흑백 사진 한 장은 우여곡절 끝에 뤼순 감옥의 안 의사에게 전달됐다. 비단으로 제작된 사진첩 모서리가 해지고 닳은 것으로 미루어 사형을 앞둔 안중근이 숱하게 품에서 꺼내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안중근 의사의 가족사진첩 보존처리를 위해 내지를 분리하는 모습.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안중근 의사의 가족사진첩 보존처리를 위해 내지를 분리하는 모습.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


삼성문화재단이 오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112주기를 앞두고 ‘안중근의사숭모회’가 소장하고 있는 안 의사의 가족사진첩 1점과 유묵 2점에 대한 유물 보존처리를 지원한다고 22일 밝혔다. 재단은 지난해 8월 안중근의사숭모회, 안중근의사기념관과 함께 안 의사의 유물에 대한 상태조사를 진행했고 보존처리가 필요한 유물 3점을 선정해 지난 1월 13일에 인수받았다. 삼성문화재단 측 관계자는 “보존처리 방법과 범위를 협의해 이달부터 보존처리 작업을 시작했고 내년 3월까지 보존작업을 마친 후 안중근의사숭모회로 인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호암 이병철 창업주의 호암미술관부터 고(故) 이건희 회장의 리움미술관까지 수십 년간 다양한 서화를 수집하고 보존·전시하며 축적한 삼성 측의 보존·수복의 노하우가 독립운동 문화유산에 활용되는 첫 사례다.

■눈물겨운 사진과 ‘보물급’ 유묵


이번에 보존작업이 진행될 안중근 가족사진은 통역관이던 소노키 스에요시가 사형이 언도된 안 의사를 위해 손수 마련한 비단 사진첩에 담아 전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 의사 서거 후 소노키가 유품을 정리해 보관했고, 그가 별세하자 딸이 일본의 한 소장가에게 기증한 후 2020년 한국으로 반환됐다.

안중근 유묵 '천당지복 영원지락'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안중근 유묵 '천당지복 영원지락'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



또 다른 보존처리 대상인 유묵은 안중근이 1910년 3월 뤼순감옥에서 쓴 ‘천당지복 영원지락(天堂之福 永遠之樂)’이다. ‘천당의 복은 영원한 즐거움이다’ 라는 뜻으로 안 의사의 천주교에 대한 신앙심이 깃든 작품이다. 최초 소장자가 누구인지는 불명확하며 안 의사의 가족사진첩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 유묵이다. 안중근의 글씨는 각기 다른 곳에 소장된 26점이 일괄 보물(구 관리번호 보물 제569호)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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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유묵 '지사인인 살신성인'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안중근 유묵 '지사인인 살신성인'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


‘지사인인 살신성인(志士仁人 殺身成仁)’은 논어 ‘위령공(衛靈公)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 ‘높은 뜻을 지닌 선비와 어진 사람은 옳은 일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재판장에서도 독립의 신념과 동양평화를 외쳐 일본인까지 감화시킨 안중근 의사의 의연함이 고스란히 담겼다. 안 의사가 1910년 3월 뤼순감옥에서 자신의 공판을 스케치한 ‘도요신분(土陽新聞)’의 통신원인 고마츠 모토고에게 써준 유묵이다. 소장자의 종손이 지난 2016년 11월 서울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기증하면서 한국에 돌아왔다.

■로열젤리보다 귀한 리움의 ‘고풀’ 동원


안중근의 유묵 2점은 작품 종이와 족자 주위를 꾸미는 장황(裝潢) 천의 불균형으로 인해 꺾이고 우글쭈글해진 상태다. 작품을 진단 한 삼성문화재단 측 관계자는 “일본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지금의 노후된 장황을 천연소재의 장황천으로 교체할 것”이라며 “유묵을 오랫동안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도록 굵게말이축과 오동나무상자도 새롭게 제작한다”고 설명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리움미술관에서 직접 만들어 10년 이상 항아리에서 발효시킨 ‘고풀’을 배접에 사용한다는 점이다. 동양 고서화의 보존처리에 사용하는 접착제 제작방법도 까다로운 데다 10년 이상 숙성한 고풀은 구하기조차 어려운 재료로, 유묵의 꺾임과 우는 현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안 의사가 눈감는 순간까지 보고 또 봤던 사진은 사진첩 연결부가 끊어져 분리되고 모서리 부분이 많이 닳고 헤진 상태다. 다행히 사진의 상태는 양호해 사진첩 부분만 원래 모습으로 복원할 예정이다.

유묵의 족자를 해체하는 모습.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유묵의 족자를 해체하는 모습.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


류문형 삼성문화재단 “삼성문화재단이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평화사상을 많은 사람들에 알리는 의미 있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기쁘다”면서 “앞으로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독립문화유산 등을 보존하여 다음세대에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의 가치를 전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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