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의 기밀문서 수십만 건을 취득해 폭로한 웹사이트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51)가 하객이 네 명 뿐인 조촐한 옥중 결혼식을 올렸다.
로이터통신, BBC 등 외신은 어산지가 23일(현지시각) 런던에서 보안 수준이 높기로 유명한 벨마시 교도소에서 그의 오랜 연인인 스텔라 모리스 변호사와 결혼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어산지가 영국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도피 생활을 할 때인 2011년 모리스가 어산지 법률팀에 합류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2015년부터 사랑을 키워왔으며 두 명의 아들을 뒀지만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다.
이에 두 사람은 지난해 말 옥중 결혼식을 허가 받았다. 결혼식은 교도소 면회시간 동안 치러졌으며 하객은 증인 2명과 교도관 2명 뿐이었다.
모리스는 결혼식 후 교도소 밖에서 결혼 케이크를 자르고 지지자들의 축하를 받았다. 그는 “매우 행복하면서도 매우 슬프다”며 “나는 진심으로 어산지를 사랑하고 그가 여기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에 대한 사랑이 우리를 지탱해 준다”고 말했다.
어산지 부부의 결혼 예복은 영국 패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작품이다. 웨스트우드는 어산지 송환 반대 운동을 하기도 했다. 웨스트우드는 신부의 베일에 ‘용감한’이나 ‘자유롭고 지속되는 사랑’ 등의 단어를 새겨넣었다. 두 자녀와 어산지의 아버지, 남동생, 모리스의 어머니 등이 교도소를 찾았다. 어산지의 형제와 아들들은 스코틀랜드 쪽 혈통을 내세우며 전통의상 킬트를 입었다.
이날 언론에는 신부의 모습만 공개됐다. 그 이유는 가디언이 결혼식 직전 보도한 모리스가 쓴 기고문에 담겼다.
모리스는 “하객 명부부터 결혼식 사진까지 사적인 행사의 모든 부분이 철저하게 감시받고 있다”며 “법무부와 교도소 당국은 우리가 제안한 증인이 언론인이라는 이유로 거부해왔다”고 전했다. 이어 “그들은 모두 개인 자격으로 참석하지만 언론사 사진기자로도 일한다는 이유로 우리의 제안을 거부했다”며 “교도소는 우리의 결혼사진이 소셜미디어나 언론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보안상 위험하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했다. 결혼식 사진이 어떤 종류의 보안 위협을 가할 수 있겠느냐며 모리스는 “말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과거 벨마시 교도소가 유죄판결을 받은 죄수들의 영상 인터뷰 촬영을 허가했던 것을 예로 들며 모리스는 “어산지에게는 다른 규칙이 있는 것 같다. 뭐가 그렇게 두려운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나는 그들이 어산지가 그저 한 인간으로 보이는 걸 두려워한다고 확신한다”며 “어산지를 대중의 인식에서 사라지게 하려고 심지어 결혼식 날에도 그가 대중에게 보이지 않기를 원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앞서 호주 출신인 어산지는 미군의 브래들리 매닝 일병이 지난 2010년 빼낸 약 70만 건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관련 보고서, 국무부 외교 기밀문서를 건네받아 이를 위키리크스 사이트에 폭로해 파문을 일으켰다. 미국은 그를 간첩 혐의로 국제 수배했다. 어산지는 영국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7년간 도피 생활을 하다 2019년 4월 영국 경찰에 체포됐고 이후 벨마시 교도소에 수감됐다.
미국은 2019년 방첩법 위반 등 18개 혐의로 기소하면서 영국에 송환을 요청했다. 어산지는 이에 맞서 소송을 내려고 했지만 지난 14일 영국 대법원은 어산지의 미국 송환을 허용한 2심 판단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