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러 원유결제 루블화만…'공급망 흔들기'에 WTI 5% 치솟아

송유관 가동중단 이어 자원 무기화

천연가스값 한때 132유로까지 올라

獨 등 에너지 불안에 對러 제재 부담

러시아 루블화 지폐에 그려진 천연가스 송유관 그림. 로이터연합뉴스러시아 루블화 지폐에 그려진 천연가스 송유관 그림. 로이터연합뉴스




국제 에너지 가격이 또 한 번 치솟고 있다. 러시아가 카자흐스탄 서부 유전으로부터 흑해로 연결되는 카스피 송유관 가동을 전면 중단한 데 이어 원유와 천연가스 대금 결제를 루블화로만 받겠다고 발표하면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추가 제재 예고에 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에너지 자원을 무기화하고 나서면서 시장이 요동치는 모습이다.

23일(현지 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5.2%(5.66달러) 오른 114.9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의 5월물 브렌트유는 5.3%(6.12달러) 오른 121.60달러로 마감했다. 천연가스 가격도 치솟아 유럽의 도매 가스 가격인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선물가격은 메가와트시당 132유로까지 치솟았다가 107유로로 장을 마쳤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에너지 시장에 충격을 줬다. 푸틴 대통령은 TV로 중계된 정부 회의에서 “유럽을 포함한 러시아에 비(非)우호적 국가에 대해 가스 공급 대금을 루블화로만 받겠다”며 7일 이내에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푸틴 대통령이 언급한 ‘비우호국’에는 미국과 유럽연합(EU)·영국·일본·캐나다·노르웨이·한국·스위스·우크라이나 등이 포함된다고 미국 의회 전문지 더힐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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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가스 및 원유 수출 계약은 일반적으로 유로화와 달러화로 표시한다. 러시아 언론은 체결된 수출 계약에 대금 지급 통화 변경 조항이 포함돼 있다는 입장이지만 유럽 측은 이를 부인하며 계약이 재협상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석유화학그룹인 OMV의 알프레드 스턴 최고경영자(CEO)는 “러시아산 가스를 유로화로 계속 지불하겠다”고 밝혔고, 프랑스의 공익사업 그룹인 엔지 측도 “루블화로 대금 지급을 변경하는 조항이 계약서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결국 루블화로 계산하겠다는 러시아와 유로 또는 달러 결제를 고집하는 유럽 국가들이 거래에 혼선을 빚으며 수급 불안정성이 커진 것이다.

특히 러시아가 전날 국제 원유의 주요 공급 통로인 카스피 송유관 가동을 전면 중단해 유럽의 에너지 공급 자체가 막힌 점도 유가에 직격탄이 됐다. 폭풍 피해를 이유로 들었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유럽 순방 시기에 맞춘 보복 조치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밥 맥널리 전 백악관 자문위원은 “기상이변 탓을 하는 것은 가장 쉬운 방법”이라며 “러시아는 고조되는 경제 전쟁에서 마지막까지 싸울 용의를 내비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럽 내 에너지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바이든 대통령과 유럽 정상들의 추가 대러 제재에 대한 부담도 더 커지게 됐다. 당장 독일 등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 일부 국가들은 내부 에너지 부족 문제 해결을 제재의 전제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U 집행위원회는 2027년까지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중단하고 천연가스를 공동 구매하자고 제안한 상태다. 25일까지 열릴 EU 정상회의에서 구체적 대책이 협의될 예정이지만 이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는 유럽 내 경제 위기를 촉발할 것”이라며 추가 대러 제재가 유럽에 미칠 위험성을 경고했다.


백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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