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해외 칼럼] 푸틴發 경기침체 대처법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치솟는 유가에 물가 오르고 있지만

기대 인플레이션은 그리 높지않아

70년대식 정책의 압박에 굴복해

급격한 금리인상 조치 하지말아야







미국 공화당 하원 대표인 케빈 매카시가 최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냉소적인 발언을 남겼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시간과 대상의 구애를 받지 않는 ‘늘 푸른’ 발언이다. 과거 수년간 누군가 그에게 똑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들려줬다고 해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그렇듯 뻔한 말을 굳이 문제 삼는 이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둘러싼 미국의 대응법에 직접적 영향을 줄 거짓말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매카시는 트위터를 통해 “지금의 높은 가솔린 가격은 푸틴 탓이 아니라 바이든 탓”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정책과 인플레이션 사이에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고 강변할 수 없지만 지금의 높은 가솔린 가격은 세계 시장에서 원유 가격이 급등한 데 따른 것이지 바이든의 탓이 아니다. 원유 가격이 치솟으면서 세계 각국의 가솔린 소비자가격이 거의 비슷한 폭으로 뛰었다. 이 같은 사실은 가솔린 가격의 고공 행진을 불러온 주범이 블라디미르 푸틴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게 중요한 문제인가. 물론이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바이든에게 책임을 돌리는 매카시의 태도는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그의 ‘무책임한’ 짧은 트윗에는 상당히 중요한 경제적 이슈가 담겨 있다.

좋든 싫든 세계는 푸틴 쇼크에 직면한 상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에 맞선 서방측 경제 제재의 결과로 오일을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연일 치솟고 있다. 그러나 푸틴 쇼크가 이미 불황의 늪가에 위태롭게 서 있는 러시아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 과연 경기 침체로 이어질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정답이다. 우리는 얼마든지 ‘푸틴 리세션(경기 침체)’를 피해 갈 수 있다. 피하느냐 못하느냐는 우리의 정책 대응에 달렸다. 그리고 올바른 대응을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국외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미국의 국내 오일 가격이 급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73년의 욤 키푸르 전쟁과 1979년의 이란 혁명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2010~2012년 유가 급등은 2008년의 금융위기로부터 세계경제가 회복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당시 높은 원유 가격이 가솔린 가격을 공중으로 쏘아 올리자 소비자들의 불평이 터져 나왔다. 그때의 가솔린 가격을 근로자 평균임금과 비교해보면 요즘 기준으로 갤런당 5달러 선에서 정점을 찍은 것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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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70년대와 2010년대 초반의 오일 쇼크가 불러온 경제적 파장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1970년대의 오일 쇼크는 미국 경제의 심각한 침체로 이어졌다. 반면 2010~2011년 쇼크는 한창 진행 중이던 경제 회복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1997년 벤 버냉키, 마크 거틀러와 마크 왓슨은 유가 급등이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고전적 해설서를 출간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오일 쇼크에 뒤이어 나오는 리세션은 주로 ‘내생적 통화정책 반응’을 반영한다. 쉽게 풀어 말하자면 1970년대의 경기 침체는 유가 상승 때문이 아니라 임금·금리 상승의 악순환을 우려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급격한 금리 인상이라는 강수를 뒀기 때문이다.

반면 2010~2011년의 경우 연준은 금리 인상을 하지 않았다. 달러화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공화당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시 연준 총재였던 버냉키와 그의 동료들은 통화정책을 바꾸지 않았고 낮은 금리 수준을 유지했다. 연준의 금리 인상 거부는 이후의 상황 전개를 통해 정당성을 입증받았다. 가스 가격은 멈춰 섰고 인플레이션 기세는 누그러졌으며 경제는 줄기차게 성장을 이어갔다.

이 같은 과거의 경험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교훈이 무얼까. 인플레이션이 낮은 수준이라면 어떤 정책을 추진해야 할지는 너무도 자명하다. 금리를 인상하지 말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물가가 불편할 정도로 높게 오른 상황에서 푸틴 쇼크와 마주쳤다. 필자는 인플레이션에 너그러운 자세를 취하는 비둘기파로 종종 분류되지만 이번에는 연준이 페달에서 서서히 발을 떼야 한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 다소 과열된 듯 보이는 경제를 냉각시키기 위해 연준은 점진적인 금리 인상을 단행해야 한다.

반면 연준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197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주변의 압력에 굴복해 급격히 금리를 인상하는 등의 급제동 조치를 취하지 말아야 한다.

상승 중인 유가는 향후 수개월간 물가를 높은 수준에 머물게 할 것이고 연준은 과잉 조치를 시행하라는 압력에 시달릴 것이다. 부분적으로 이 같은 압력은 고유가가 국내 정책에 의해 야기됐다고 억지를 부리는 매카시 같은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그들은 실패로 끝난 1970년대식의 인플레이션 정책을 그대로 재탕하려 든다.

그러나 2022년은 1979년이 아니다. 현재 인플레이션은 높은 수준을 기록 중이고 내년의 기대인플레이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기 기대인플레이션은 그리 높지 않고 1980년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 이는 인플레이션이 확실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연준이 차분한 대응 자세를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경제가 다소 냉각되고 필자의 예상대로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쇼크가 일회성에 그친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필자의 생각이 틀릴 수 있을까. 물론이다. 그러나 1970년대에 그랬듯 필자의 생각과 달리 연준이 과격한 금리 인상이라는 잘못된 방향으로 길을 잡았을 때 발생할 막대한 비용을 생각해보라. 적어도 현재로서는 안정된 금리 정책을 통해 푸틴 쇼크가 푸틴 리세션으로 전환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을 듯 보인다. 그리고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달성하기를 원하는 최상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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