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27일과 3월 5일 북한이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자 우리 군과 관련 기관들은 당혹감에 빠졌다. 해당 미사일이 비행 후반부에 약 세 조각으로 나뉘는 것이 탐지됐기 때문이다. 공중폭발해 파편이 쪼개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탄두가 3개로 나뉘었을 가능성이 컸다. 하나의 미사일에 여러 개의 핵탄두 등을 실어 나르는 다탄두미사일이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 것이다. 이후 며칠간의 검토 끝에 관계 당국들은 해당 미사일이 길이가 최대 24~25m(‘38노스’ 추정 기준)에 달하는 초대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인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이는 우리 군이 11일 북한의 시험 발사 미사일 종류를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에서 ICBM으로 수정 발표하기 직전까지 벌어졌던 뒷이야기다. 당초 2월 27일과 3월 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우리 합동참모본부는 탄종을 MRBM으로 추정했다. 비행 거리가 비교적 짧고 고도 역시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2월 27일의 경우 비행 거리 약 300㎞, 고도 약 620㎞로 탐지됐고 3월 5일의 미사일은 비행 거리 약 270㎞, 고도 약 560㎞로 분석됐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었다. 비행 후반부에 세 조각으로 나뉘었다면 다탄두미사일일 가능성이 있는데 북한이 약 500㎏급(추정치) 소형화한 핵탄두를 3개나 실을 만큼 내부 공간을 가진 MRBM은 아무리 되짚어봐도 없었던 것이다. 북한의 대표적 MRBM인 ‘북극성-2형’ 등을 살펴봐도 직경 등을 감안할 때 다탄두 3개가 들어갈 용적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미사일들을 쭉 훑어보다가 우리 당국의 눈에 들어온 것이 화성-17형이다. 2020년 10월 10일 평양 열병식에서 모크업(mock-up·실물 모형) 형태로 이동식발사대(TEL)에 실려 공개됐던 화성-17형은 당시 사진 판독 결과 폭이 약 2.5m 정도일 것으로 추정됐는데 이 정도면 소형 핵탄두 3개가량을 충분히 넣을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에 착안해 우리 당국은 정밀 분석에 들어갔고, 결국 2월 27일과 3월 5일의 미사일 도발은 북한이 화성-17형 관련 엔진 등을 시험하기 위한 발사인 것으로 잠정 결론짓게 됐다.
북한은 24일에도 평양 순안 일대에서 또다시 ICBM을 쏘고 25일 화성-17형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이는 다탄두 ICBM의 기술을 완성시키기 위한 과정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다탄두 ICBM은 단일 탄두 ICBM에 비해 미군의 미사일방어체계(MD) 요격을 뚫고 미국 본토를 타격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김정은 정권이 기술 완성에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다탄두가 뭐길래=사실 다탄두미사일은 최신 기술이 아니다. 미국과 옛 소련이 냉전기였던 1960년대부터 개발을 시작했던 기술이다. 초기의 다탄두미사일은 단순히 하나의 탄두부에 여러 개의 자탄을 실어 우주공간에서 대기권에 재진입하기 전 산탄총 쏘듯 자탄들을 광범위한 지역에 흩뿌리는 방식으로 고안됐다. 이 같은 초기 방식의 자탄들을 ‘다탄두 재진입체(MRV)’라고 부른다.
MRV 기술은 이후 보다 정교한 ‘개별 유도 다탄두 재진입체(MIRV)’로 진화한다. 이는 자탄들이 각각 서로 다른 표적을 공격하거나, 동일한 목표를 향해 여러 개의 자탄들이 동시에 혹은 시차를 두고 타격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MIRV의 핵심 기술은 ‘후추진체(PBV)’라고 불리는 탄두 운반체다. PBV는 ICBM의 맨 상층부(탄두부)에 장착된다. 미사일 비행 후반부에 떨어져 나와 자체적인 모터로 추진하다가 대기권으로 진입하는 단계에서 내장한 자탄들을 발사한다.
◇북한은 어떻게 기술을 얻었나=최초의 다탄두미사일은 미국이 1964년에 실전 배치한 ‘폴라리스 A3’ 미사일이다. MRV 방식인 이 미사일은 200킬로톤(Kt) 위력의 소형 핵탄두 3개를 실을 수 있도록 개발됐다. 미국은 이어 1968년 세계 최초의 MIRV ‘미니트맨 3’의 시험 발사에 성공해 1970년에 전력화했다.
옛 소련은 1967년 다탄두 방식의 초대형 ICBM인 ‘R-36’ 개발을 시작해 1970년에 실전 배치했다. 소련의 다탄두미사일은 초기에는 MRV 방식이었다. MIRV 방식의 다탄두미사일이 소련에서 실전 배치된 것은 1977년부터였다. 중국도 가세했다. 1970년대 초 MIRV 개발을 본격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는 ICBM인 둥펑-31 시리즈 및 둥펑-41,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쥐랑-2 등에 MIRV가 탑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영국·프랑스·인도가 MIRV 기술 보유국으로 평가된다. 다른 잠재적 보유국으로는 이스라엘이 꼽힌다. 이란과 파키스탄도 개발을 비공개로 추진해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군의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탄도미사일은 옛 소련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며 “MIRV 관련 기술도 옛 소련 기술을 계승한 러시아·우크라이나 등을 통해 입수했거나 관련 부품 등을 확보해 역설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이나 파키스탄·이란 등을 통해 기술을 획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위협 수준과 대비 방향은=북한은 최근의 ICBM 시험 발사 재개를 통해 다탄두미사일 기술을 상당 수준 검증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미 개발해 전력화 단계에 돌입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과 ICBM인 화성-15형 등에도 다탄두 기술 적용이 시도됐을 것으로 추정됐으나 PBV 적용 여부는 미지수였다. 반면 화성-17형의 경우 PBV가 적용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 같은 다탄두 ICBM은 대기권 재진입 직전 자탄들이 분리되면 요격하기 어렵다. ICBM이 외기권에서 날아오는 중간 단계에서 요격하는 방법도 있지만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가장 최선의 방법은 발사 징후가 분명하고 실행이 임박했을 때 그 직전에 자위권 차원에서 발사 장치 등을 무력화하거나 미사일 자체를 파괴하는 선제적 자위권 발동이다. 우리 군은 북한에 대한 ‘핵·WMD대응체계(3축 체계)’를 준비 중인데 그중 첫 단계인 ‘전략적 표적 타격(킬체인)’이 선제적 자위권 발동에 해당한다.
미국 본토가 ICBM으로 위협을 받으면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증원군 파병 및 핵우산 제공 등의 안보 공약이 작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결과적으로 ICBM은 미국만의 위협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보에도 위협인 것이다. 따라서 유사시 북한의 ICBM 발사가 임박했고 다른 억제 수단이 듣지 않는 긴급 상황이라면 불가피하게 킬체인과 같은 선제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도 각오하고 한미가 관련 작전 계획 및 장비를 보강하는 등 만전을 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