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오데마피게






1970년대 초 시계 종주국 스위스는 심각한 위기에 빠진다. 일본 세이코 등이 전지로 돌아가는 ‘쿼츠’를 내놓으며 기계식이 지배하던 시계 시장을 뒤엎은 것이다. 스위스 시계 제조업 종사자의 대량 실업이 사회 문제로 등장할 정도였다. 하지만 압도적 기술을 지닌 스위스의 저력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스위스의 자존심을 지킨 대표 주자는 ‘오데마피게’였다. 이 회사는 스테인리스스틸로 된 최초의 럭셔리스포츠와치로 판도를 바꿨다. 이 브랜드가 바로 오늘날 고급 스포츠 시계의 절대 강자인 ‘로열오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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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마피게는 스위스의 작은 마을 르브라수스에서 태어난 줄 루이 오데마와 에드워드 오귀스트 피게가 각각 24세·22세 때인 1875년에 설립했다. 이들은 늘 새로운 기술로 시계 공학의 정상을 달렸다. 기계 부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스켈리턴 시계(1934년)’와 1.64㎜ 두께의 세계에서 가장 얇은 시계(1946년) 등이 대표 작품이다. 시계 기술이 총합된 ‘그랜드컴플리케이션’도 이 회사의 자랑이다.

오데마피게의 기술력은 1972년 선보인 로열오크에서 정점을 이뤘다. 세계적 시계 디자이너 제럴드 젠타가 기획한 로열오크는 영국군 군함 포문의 이름을 땄는데 특유의 8각형 형태로 출시 즉시 유럽 상류층의 선풍적 인기를 모았다. 이후 50년 동안 하이엔드 스포츠시계 시장을 지배했고 이를 통해 오데마피게는 롤렉스·파텍필립과 함께 스위스 3대 독립 시계 브랜드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오데마피게는 연간 4만 개만 생산되는데 2009년 국내의 한 명품관에서 시가 11억 원짜리가 팔려 화제가 됐다. 2012년 공개된 ‘규칙을 깨려면 먼저 규칙을 마스터하라’는 슬로건에는 최고 기술에 대한 이 회사의 집착이 배어 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특수요원들이 28일 자국에 대한 스위스의 경제 제재에 대응해 오데마피게 모스크바 지사에서 수백만 달러 규모의 시계를 압수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기 위해 스위스가 중립국 지위를 버리면서까지 제재에 들어가자 보복한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 등의 팽창주의를 경계하고 자유 시장경제 등의 가치를 공유하는 경제·안보 동맹을 더욱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김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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