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이준석의 혐오 정치, 보수의 품격을 묻다

◆정민정 논설위원

장애인 시위에 ‘비문명’ 낙인 찍으며

젠더 이어 장애인·비장애인 갈라치기

공감 아닌 경쟁 인식으론 통합 불가능

보수의 품격 없는 정치 존재 이유 있나

정민정 논설위원정민정 논설위원




2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세계적인 영화제인 만큼 수상작에 대한 관심도 높았지만 올해는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배우 윤여정이 화제의 중심에 섰다. 우크라이나 난민을 지지한다는 의미의 파란 리본을 왼쪽 가슴에 달고 등장한 그는 밀봉된 카드를 펼쳐 남우조연상 수상자를 확인한 후 수어를 시작했다. 수상자로 선정된 청각장애인 연기자 트로이 코처를 위해 서툴지만 진심을 다해 수어로 호명한 것이다. 무대 위로 올라온 코처와 깊은 포옹을 나눈 윤여정은 코어가 수상 소감을 편하게 전하도록 트로피를 대신 들어주기도 했다. 배우를 넘어 인간의 품격을 보여준 잊지 못할 장면이다.



비슷한 시각 태평양 너머 이 땅에서는 때아닌 장애인 혐오 논란이 벌어졌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장애인 단체의 시위 방식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논란을 촉발시켰다. 이 대표는 25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이동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시위를 벌이는 데 대해 “아무리 정당한 주장도 타인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면서 하는 경우에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시민의 출퇴근을 볼모 삼는 시위가 지속될 경우 현장으로 가서 따져 묻겠다”고도 했다. 28일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최대 다수의 불행과 불편을 야기해야 본인들의 주장이 관철된다는 비문명적 관점으로 불법 시위를 지속하고 있다”며 ‘비문명’과 ‘불법’으로 낙인찍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오전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3호선 경복궁역 승강장으로 향했다. 그 역시 시각장애인인 김 의원은 장애인 단체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 숙여 사과했다.



“적절한 단어 사용이나 소통으로 마음을 나누지 못한 정치권을 대신해 사과 드립니다.” 김 의원의 목소리는 떨렸고, ‘싸가지 없는’ 정치권을 대신해 무릎을 꿇은 그녀를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은 무거웠다. 진심 어린 사죄를 건넨 그가 경복궁역에서 9호선 국회의사당역까지 지하철로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총 1시간 23분. 비장애인은 30여 분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그 거리를 누군가는 마음에 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끝끝내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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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대선 국면에서 이대남(20대 남성)의 지지를 호소하는 대신 여성을 배제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40대를 제외한 전 세대 남성 유권자의 지지를 얻어 선거에 이기겠다는 ‘세대 포위론’을 내세웠고 노골적으로 여성 유권자를 지우려 했다. 한계는 분명했다. 투표에 나선 20대 남성(58.7%)과 20대 여성(58.0%) 10명 중 6명 꼴로 각각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선택했다.

“권력 감정에 중독된 팬덤은 권력 재생산을 꿈꾸지만 그 방법론은 ‘증오의 정치’ 일변도라 오히려 역효과를 낳기 십상”이라는 강준만 교수의 탁견이 적확(的確)하게 증명됐다. 성별 갈라치기에 이어 장애인 이슈를 꺼내든 이 대표가 다음에는 어느 집단을 짓눌러 ‘증오의 정치’를 부추길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지난해 이 대표는 지상파방송에 출연해 “보수의 언어는 공감이 아닌 공정·경쟁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정치를 바라보는 태도, 보수를 정의하는 방식을 단적으로 드러낸 말이다. 보수의 사상적 뿌리를 정립한 미국의 사상가 러셀 커크는 “인류의 정신적이고 지적인 전통의 계승이자 ‘영원한 것들’을 지키려는 노력이 바로 보수주의”라고 했다. 국가에 대한 충성, 가족에 대한 헌신, 공동체를 위한 봉사, 약자에 대한 배려 등이 보수의 품격을 상징하는 이유다.

영국 보수당의 기틀을 다진 벤저민 디즈레일리 전 총리는 “오두막이 행복하지 않으면 궁전도 안전하지 않다”는 말을 남겼다. 혹여 이준석의 정치에서 낡고 허름한 오두막은 도시의 미관을 위해 갈아엎어야 할 대상은 아닌가. 낡은 오두막 속 비통한 자들을 보듬지 못하는 정치라면 과연 존재할 이유가 있는가.

정민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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