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 칼럼] 유럽 거울삼아 미국 경제 바라보기 ?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美 인플레 강도 상대적으로 센 건

유럽보다 빠른 경제 회복의 증거

공급난 등 글로벌 악재 약화되면

정책변화 없이도 곧 수그러들 것





지난주 유럽연합(EU) 통계청은 유로화 지역의 2월 물가 상승률 예상치를 수정·발표했다. 유로권역의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5.9% 상승하는 등 대다수 전문가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전이 식품과 에너지 가격에 부담을 주고 있어 물가는 더욱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유럽보다 높다. 미국의 2월 소비자가격은 1년 전에 비해 7.9%나 뛰었다. 기술적 이유로 미국과 유럽의 인플레이션 수치를 맞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유럽 대비 2%포인트가량 높다고 보면 된다. 문제는 미국뿐 아니라 다른 많은 국가들이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공화당 전체와 민주당 내 보수 성향 의원들은 현재의 인플레이션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규모 지출 정책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럽은 바이든의 ‘미국인 구조 계획’에 비견할 만한 부양책을 시행하지 않았다. 유로 지역의 재정 부양 표준 척도인 구조적 예산 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퍼센티지로 환산할 경우 미국의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그렇다면 유럽 물가 상승의 원인은 무엇일까. 부분적인 대답은 에너지 가격 상승에 있다. 지난주 필자는 공화당 하원 대표인 케빈 매카시가 높은 에너지 가격을 블라디미르 푸틴이 아닌 바이든의 정책 탓으로 돌렸다는 점에 주목했다. 매카시의 발언은 잠꼬대에 불과하다.



영국의 자료를 이용해 이 같은 주장의 허구성을 짚어보자. 2020년 12월 말 영국의 가솔린 가격은 ℓ당 116펜스, 미화로 갤런당 5.94달러였다. 2021년 3월 중반에 이르러 이 가격은 갤런당 8.23달러로 치솟았다. 같은 기간 미국의 가스 가격은 2.24달러에서 4.32달러로 올랐다. 영국의 높은 가솔린세를 감안하면 양측의 인상 폭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필자가 알기로 바이든은 분명히 영국 총리가 아니다. 국내 가스 가격 급등세가 바이든의 정책 탓이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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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가격뿐이 아니다. 만연한 공급망 문제 역시 미국의 물가 상승에 동력을 제공했다. 상품 수요에 큰 변화가 생기면서 항구마다 하역 작업에 과부하가 걸렸고 컨테이너선 물동량도 수요를 따라잡지 못했다. 이 같은 상황은 예상보다 오랫동안 지속됐고 미국뿐 아니라 유럽까지 영향을 받았다.

그렇다면 유럽의 인플레이션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바는 무엇인가. 첫째, 미국의 인플레이션 가속화는 국내 정책 탓이 아니라 3분의 2 이상이 글로벌 요인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둘째, 우리가 팬데믹과 전쟁의 어두운 터널을 최종적으로 빠져나가면 이 같은 글로벌한 힘이 약화되면서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급진적인 정책 변화 없이도 수그러들 것이다.

그렇다 해도 영국보다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의 기세가 사나운 것은 사실이다. 왜 그럴까. 거의 확실한 한 가지 주요 요인은 미국 경제가 유럽에 비해 훨씬 빠르게 회복됐다는 것이다. 미국의 지난해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은 팬데믹 이전에 비해 3% 늘어났다. 반면 같은 기간 유럽은 팬데믹으로 인한 손실조차 제대로 만회하지 못했다. 혹시나 싶어 하는 말이지만 미국 인구의 빠른 증가세를 감안해 실질 국내총생산 수치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근로연령대에 속한 미국 인구는 이민자들의 수가 크게 줄어들면서 2019년 이후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경제성장은 GDP뿐 아니라 근로자들에게도 도움을 줬다. 시간당 실질임금이 물가 상승으로 다소 상쇄되기는 했지만 미국의 노동 보수는 팬데믹 전야에 비해 13.6%나 인상됐다. 유럽의 5.2%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치다. 초과 인플레이션은 미국의 최근 경제성장이 지극히 양호했음을 보여준다. 국내 경제는 분명히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물가가 안정될 때까지 금리 인상을 이어갈 것이라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결정이 옳은 이유다.

물론 경기 과열이 문제지만 그것이 우리가 거둔 모든 성과를 가리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장기적 ‘상흔 효과’를 피하면서 팬데믹 침체에서 신속히 벗어났다. 전부는 아니지만 우리가 겪고 있는 인플레이션의 많은 부분은 아마도 일시적인 글로벌 요인들을 반영하고 있으며 다수의 지표들은 장기 기대인플레이션이 안정적이라는 사실, 즉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체감 경기가 좋지 않다고 불평하거나 마치 경기를 낙관하는 듯 돈을 펑펑 쓰면서도 여론조사에서는 부정적 반응을 보인다. 현 시점에서 필자가 당부하고 싶은 말은 유럽이라는 거울을 통해 국내 경제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팬데믹에서 회복되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다. 게다가 푸틴이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비교적 선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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