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국민이 함께 만드는 소리책

장소원 국립국어원장






국어학회는 1959년에 설립된 국어학 연구 단체다. 회칙에 ‘본회는 순수한 국어학의 연구와 보급을 꾀하며 아울러 연구자 서로의 친목을 두텁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기돼 있어 그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창립 당시는 해방 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초등학교 담벼락마다 ‘국어 사랑 나라 사랑’이 흰 페인트로 큼직하게 쓰여 있었고 전 국민이 국어순화운동에 열심히 참여하던 시기였으니 국어학회는 시민운동을 하는 모임이 아니고 국어학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이들의 모임임을 분명히 하고 싶었던 듯하다. 초기부터 회장직도 연세대·인하대·고려대·서울대 등 여러 대학의 교수들이 번갈아 맡았다. 학술대회가 열리면 우리나라에서 국어학을 하는 학자들이 모두 모이다시피 했고, 이들은 뜨거운 토론으로 밤을 지새우곤 했다. 필자가 제30대 회장을 맡았던 2019년은 마침 창립 60주년이 되는 해여서 어떻게든 뜻깊은 학술대회로 만들어 보려 동분서주하던 기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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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 회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제는 국어학자의 수가 엄청나고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한국어 연구자들이 줄줄이 배출될 정도로 국어학이 성장했다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는 세계역사학자대회도 있고 세계철학자대회도 있는데 세계한국어학자대회도 개최해 봄직하다는 구상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올해 3차 대회가 개최될 ‘세계한국어한마당’의 발단이었다. 이 행사는 국고 지원을 받아 국내외의 국어학자, 국어 교육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학자와 한국어 교육자뿐 아니라 인공지능(AI) 전문가와 통·번역 전문가 그리고 한글 관련 산업 종사자까지 참여하는 규모로 확대됐다. 코로나로 인해 두 해는 온라인으로 개최할 수밖에 없었지만 올해는 드디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해서 대규모로 펼칠 예정이다.

10월 한글 주간에 개최할 올해의 ‘세계한국어한마당’은 학술대회에 더해서 전 국민이 참여하는 행사로 ‘모두가 함께하는 소리책(오디오북) 만들기’를 계획하고 있다. 좋은 책을 한 권 골라 한 사람이 한 문단씩 나눠 읽음으로써 한 권의 소리책을 완성하는 것이다. 먼저 책의 저자가 머리말을 읽고, 산골 어린이가 한 문단, 섬마을 청년 어부가 한 문단, 농사꾼의 늙은 아내가 한 문단 하는 식으로 읽어 나간다. 대통령도 읽고, 장관도 읽고, 교사도, 군수도, 이장도, 사장도, 직원도 한 문단씩 읽다 보면 한 권의 소리책이 완성돼 2022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목소리와 언어 기록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우리 국민이 우리글로 쓰인 책을 우리말로 소리 내어 읽으며 ‘국어 사랑 나라 사랑’을 다시 한번 가슴속에 되새기게 될 것을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벅차오른다. 참, 책의 저자가 서문을 읽는다고 해서 꼭 생존해 있는 작가의 책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요즘 발달한 AI는 돌아가신 분의 목소리도 거의 완벽하게 재생해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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