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최근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근거가 됐던 지표를 보완하고, 일본 수출 규제 대응에 맞춰 도입했던 소비·부품·장비 기업 저금리 지원도 종료했다. 한은은 정권과 무관하다는 설명이지만 소주성과 소부장 모두 문 정부를 상징하는 정책인 만큼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현 정부 색채 지우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8일 한은에 따르면 금융통화위원회는 4월 1일부터 금융중개지원대출 관련해 신성장·일자리 지원 프로그램 중 소부장 기업과 관련된 내용을 삭제했다. 금중대는 한은이 은행에 연 0.25% 등 초저금리로 자금을 공급해 중소기업 등에 대한 대출이 늘어나도록 유도하는 제도다.
한은은 일본 수출 규제 등에 대응해 2019년 10월 1일부터 금중대 중 신성장·일자리 프로그램에 소부장 기업을 포함했다. 당시 한은은 미래 성장동력 확충에 기여할 수 있도록 소부장 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도입한 지 불과 2년 만에 신규 지원을 종료하기로 한 것이다. 워낙 저금리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보니 소부장 기업의 자금 수요는 여전한 상태다.
한은 관계자는 “일본 수출 규제 때문에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2년 동안 문제가 많이 해소됐고 정부도 극복했다는 자료를 냈기 때문에 금통위원들이 연장할 필요성이 줄었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기존에 이뤄진 대출은 만기까지 유지하되 신규 지원은 중단하기로 했다”고 했다. 소부장 지원 종료를 결정한 3월 금통위 의사록에서도 “소부장 기업의 도입목적이 달성된 것으로 평가되는 점 등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이와 함께 소주성 이론의 근거가 됐던 노동소득분배율 지표 수정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한은은 3월 18일 ‘노동소득분배율 지표 개선을 위한 세미나’를 열고 개편 방향을 공개했고 6월까지 보조지표를 추가로 발표하기로 했다. 노동소득분배율은 문 정부의 대표적인 경제 정책인 소주성 근거가 된 통계다.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등은 해당 지표의 하락을 근거로 소주성 정책을 설계했다.
노동소득분배율은 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생산활동을 통해 발생한 소득은 노동, 자본, 경영 등 각 생산요소를 제공한 경제주체에 나눠진다. 이 가운데 노동 제공 대가로 가계가 가져가는 몫을 ‘피용자보수’라 하고, 생산활동을 주관한 생산 주체 몫은 ‘영업잉여’라 한다. 피용자보수와 영업잉여를 더한 값에서 피용자보수가 차지하는 비율이 노동소득분배율이다. 노동 가치와 자본 가치를 비교할 수 있는 것으로 이 값이 작을수록 성장으로 버는 돈이 가계가 아닌 기업 등으로 쏠린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소주성 필요성을 주장한 일부 경제학자들은 노동소득분배율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에 경제 성장이 근로자의 임금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기업만 돈을 벌고 있을 뿐 노동자 임금은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부작용만 일으켰고 정작 계층 간 소득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창용 한은 총재 역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이 자영업자 등에게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해 오히려 취약계층 노동자의 고용이 불안해질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한은이 편제한 통계에 따르면 노동소득분배율은 2010년 이후 두 해를 제외하고 꾸준히 상승했다는 것이다. 소주성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 온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분모에 노동소득과 연관성이 떨어지는 고정자본소모가 들어갔기 때문에 노동소득분배율이 낮아진 것으로 보인 것”이라며 이러한 문제를 알고도 침묵한 한은이 직무유기를 했다고 비판해왔다. 이와 함께 한은의 노동소득분배율은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한계도 있었다.
한은은 노동소득분배율을 자의적으로 산식을 바꿔 입맛대로 해석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2~3년 전부터 지표 수정 보완을 준비했다. 결국 한은은 대선 직후 지표를 개선한다고 공식 발표한 데 이어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나 보완 지표를 내놓게 됐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경제학계 전반의 소식을 전하는 연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