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20일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에 당론 가결로 협조한 것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목 잡기 프레임을 벗어나야 할 필요성이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삼중고로 민생 경제가 시름하는 가운데 국정 컨트롤타워인 총리 공백 장기화에 대한 책임을 지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윤석열 대통령이 시정연설 등에서 협치를 약속한 만큼 협력을 통해 얻어낼 것은 얻어내자는 전략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비록 다수당이지만 전처럼 입법 일방 독주를 하면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로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도 한 후보자 인준을 계기로 야당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민생 법안 추진에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인다. 앞서 민주당이 불참을 선언해 무산된 영수회담도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날까지도 한 후보자 인준안을 부결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한 후보자의 김앤장 고액 연봉은 전관예우로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전날 강병원 인사청문특별위원회 간사가 친전을 돌리며 부결을 호소하면서 강경론자들이 결집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럼에도 본회의 전 민주당 의원총회 표결에서 가결이 나온 것은 의원들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목 잡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현실론을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현재 지방선거에서 호남 세 곳과 제주 외에는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다. 임기 초 국정 운영 지지와 국민의힘 지지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한 후보자 임명 반대로 역풍을 맞게 되면 2018년 지방선거와 정반대의 결과를 받아들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한 후보자 임명 동의를 주장했고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 역시 같은 입장에 섰다. 결국 의총에서 친명계(친이재명계) 등이 현실론을 내세우면서 한 후보자 총리 임명 반대는 실익이 없다는 판단이 우세했다는 분석이다. 이는 당 강경파의 주도로 검찰에 경제·부패 범죄 수사만 남기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1단계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지방선거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의총 뒤 기자간담회에서 “책임 야당으로서 원칙과 견제를 통해 정쟁이 아닌 민생과 경제를 우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는 한 후보자 인준안 통과로 민주당과 본격적으로 협치를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 후보자가 협치의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처음부터 협치를 염두에 두고 지명한 총리”라고 말했다. 또 앞서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날 추진했던 여야 3지도부의 김치찌개·삼겹살 만찬 회동도 다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조만간 낙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이 국민 여론을 의식해 한 후보자 임명동의안 통과에 협조한 만큼 윤 대통령도 민주당 지지자들의 정서를 받아들여 정 후보자를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국민의힘 내에서도 정 후보자 임명이 지방선거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여론이 있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에서 협치의 손길을 내밀었는데 저희들이 외면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민주당의 거듭된 일방 법안 처리로 극한 갈등을 겪었던 국회도 오랜만에 화해 무드가 돌 것으로 전망된다. 박형수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논평에서 “민주당의 전격적인 총리 인준 협조에 경의를 표한다”며 “앞으로도 산적한 현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협치의 정신이 빛을 발하도록 여야가 함께 노력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여야는 당장 2차 추경안을 지방선거 전에 통과시킬 확률이 높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이 주장하는 손실보상 소급 적용을 반영하거나 추후 추가 논의하기로 약속하는 등의 협조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 국회를 마비시킬 뇌관으로 꼽혔던 원 구성 역시 비교적 순탄히 풀릴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이 법사위원장직을 가져오되 국회의장 우선 선출에 협조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이외에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입법화 과정에서도 민주당 요구 반영 등이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사법개혁특별위원회를 통한 검수완박 2단계 추진에서 또다시 충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검찰 직접 수사권이 꼭 필요하다는 지론을 가진 데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이에 동조하는 입장으로 분류된다. 국민의힘은 이를 의식한 듯 민주당의 한 후보자 총리 임명 반대에도 사개특위 구성에는 협조하지 않고 버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