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공기업

[시그널] 전주 이전 국민연금, 투자업계 사관학교로

1000조 굴리던 전문 인력들 기업·PEF 이직 속출

부동산·인프라 투자 늘면서 해외 러브콜도 잇따라

지난해 퇴직 핵심 운용역들 또 어디로 갈지 관심

국민연금공단 전경국민연금공단 전경




1000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며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성장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투자업계의 인재 사관학교 역할을 하고 있다. 핵심 운용인력이 대기업의 투자 담당 임원으로 이직하는가 하면 다수의 사모펀드 운영사(PEF)나 증권사 등에서 활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과 인프라, 사모펀드 등 대체투자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국민연금 출신 운용역들의 몸값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24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SK스퀘어(402340)는 최근 해외 사모펀드 및 공동투자 전문가인 배학진 전 국민연금공단 미주사모투자팀장을 글로벌투자담당 임원(MD·Managing Director)으로 영입했다. 배 전 팀장은 국민연금에서 10여년 간 근무하면서 뉴욕사무소, 사모투자2팀(해외사모팀), 미주사모투자팀장 등을 거쳤다.

미주, 유럽, 동남아 지역 사모펀드 운용과 공동 투자를 총괄하면서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싱가포르투자청(GIC), 테마섹(TEMASEK), 글로벌 PEF 운용사 등과 일했다. 국민연금 해외 사모 투자 자산을 30조 원 수준까지 늘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다.

국민연금 출신들이 자산운용사나 증권사, PEF 등으로 옮긴 사례는 그간에도 적지 않았지만 대기업 임원으로 직행한 사례는 흔치 않아 배 부사장의 이동은 연금내에서도 관심을 모았다는 후문이다. SK스퀘어는 SK그룹에서 반도체 및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투자를 주도하는 중간지주회사로 배 부사장에게 글로벌 PEF와 공동으로 펀드를 조성하고 신규 포트폴리오를 발굴하는 중책을 맡긴 것으로 전해졌다.

SK스퀘어 뿐 아니라 다른 국내 대기업들도 해외 인수합병(M&A)과 신사업 투자를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 만큼 국민연금 출신의 투자 전문가 영입 사례는 향후에도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의 위상은 해외에서도 높아 실력 있는 운용역들에 대한 스카우트 제안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 뉴욕사무소에서 근무하던 데이비드 박 운용역은 올 초 미국 부동산 전문 사모펀드인 스톡브릿지캐피털그룹으로 둥지를 옮겼다. 박 운용역은 최근 6년간 국민연금에서 미국 부동산 투자를 담당해 왔던 전문가다. 국민연금 해외 사무소에서 일한 바 있는 한 관계자는 “해외에서 함께 투자하거나, 투자건을 검토하면서 신뢰 관계를 구축한 사모펀드나 운영사 등에서 영입 제의가 적잖이 온다”고 말했다.



앞서 국내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국민연금 본사가 전주로 옮겨가면서 국민연금 OB 사단이 형성될 만큼 폭넓은 인맥이 구축된 상황이다. 허정권 전 국민연금 인프라투자실 팀장은 지난해 에너지 투자 전문 사모펀드인 EIP(에너지이노베이션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 부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허 부대표는 2015년 국민연금에 합류했고 2018년 신설된 인프라투자실에서 국내 투자를 전담했다.

메리츠투자증권에서 지난해 신영증권(001720)으로 옮긴 고성원 글로벌마켓부 상무도 기금운용본부 해외채권팀장과 뉴욕사무소장 등을 거친 국민연금 출신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유상현 PEF 2부문 대표와 스틱얼터너티브 자산운용의 양영식 대표도 국민연금에서 대체투자실을 이끌며 명성을 높인 바 있다.

국민연금 운용역들에 대해 국내·외를 막론하고 영입 경쟁이 불붙는 것은 우선 민간 분야와 차별화된 인재 육성 방식 덕분이다. 국민연금의 운용역들은 글로벌 PEF의 딜 소싱과 투자 심의에 참여할 수 있다. 국내 민간 기업 및 운용사보다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확보하면서 대형 투자 경험을 축적하는 셈이다.

내부적으로 해외 투자 운용역을 육성하는 데 한계가 있는 민간 기업이나 사모펀드 입장에선 국민연금 운용역이 탐날 수 밖에 없다. 이에 비해 국민연금 본사가 전주로 이전하면서 운용역들의 장기 근속에 대한 관심이나 로열티는 크게 약화된 측면이 있다.

최근 사모펀드 운용사(PEF)들이 부동산 및 인프라 투자 확대에 나서면서 국민연금 출신 운용역들의 탈출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국민연금에서 인프라 투자를 담당한 손상욱 팀장이 사모신용펀드인 IMM크레딧솔루션(ICS)으로 이직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모신용펀드는 기존 PEF가 주력하는 경영권 인수(바이아웃)가 아닌 부동산·인프라·대출·메자닌 투자를 전문으로 한다.

2020년 10월 자본시장법 개정 후 국내 PEF의 사모신용펀드 자회사 설립이 줄을 잇고 있어 국민연금 운용역을 찾는 곳이 더욱 늘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국민연금 주변에선 지난해 말 사직한 김현수 전 부동산투자실장과 김지연 전 인프라투자실장이 연내 투자업계에 복귀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한 투자업계의 고위관계자는 “국민연금 운용역들은 대형 글로벌 기관투자가 및 사모펀드와 인연을 맺고 있고, 큰 딜에 참여할 기회도 많았다” 면서 “해외 및 부동산 투자를 늘려야 하는 기업과 자산운용사 입장에선 국민연금 출신을 영입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솔루션”이라고 말했다.


최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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