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수영하며 음미하는 산의 풍경…방문객 추앙하는 '환대의 예술'

[로비의 그림]포시즌스 호텔 서울

프랑스 설치작가 베일랑의 '모빌 N°25'

로비 들어서자마자 찬란한 노랑으로 반겨

버그만 꽃집 옆 위치 황란의 '하얀바람'

단추 25만개로 그려낸 경복궁 자태 감탄

3층 그랜드볼룸엔 도윤희 '눈이 나린다'

맑은 연못 위 하얀 꽃잎의 황홀경 선사

밤 시간에 본 그자비에 베일랑의 ‘모빌 N°25’는 유난히 더 빛난다. 조상인기자밤 시간에 본 그자비에 베일랑의 ‘모빌 N°25’는 유난히 더 빛난다. 조상인기자




고급 호텔의 로비는 환대의 공간이며 그곳에서 만나는 엄선된 예술품은 방문객을 추앙한다. 서울 사대문 안 유일의 5성급 호텔인 종로구 새문안로 포시즌스호텔서울에서 이를 경험할 수 있다.



정문으로 들어왔든, 주차장과 연결된 엘리베이터로 올라왔든 포시즌스호텔의 리셉션 데스크로 향하는 길에 마주할 수밖에 없는 찬란한 노란빛이 있다. 프랑스 출신의 현대미술가 그자비에 베일랑의 설치 작품 ‘모빌 N°25’다. 노랑은 간절한 기다림과 터질 듯한 반가움의 색이다.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면 오래된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달아달라고 노래한 미국의 팝그룹 토니 올랜도&돈의 1973년 곡 ‘노란 리본을 묶어주오’뿐만이 아니다. 새 봄이 왔음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산수유·개나리의 꽃잎에서, 알을 깨고 갓 태어난 병아리의 깃털에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이의 첫 가방에서 우리는 환대의 노랑을 만날 수 있다. 베니스비엔날레에 초청되고 베르사유궁전에서 개인전도 열었던 베일랑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야외조각전시장에서 붉은색 ‘말’ 조각으로 만날 수 있고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의 랜드마크가 된 푸른색 ‘그레이트 모빌’로도 접할 수 있다. 이곳 포시즌스의 ‘모빌’은 형광 연두색에 가까운 노랑으로 태양이나 보름달처럼 스스로 발광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고개를 치켜들고 작품의 맨 윗부분을 찬찬히 살펴본다면 꼭대기에 매달린 ‘노’를 찾을 수 있다. 배를 저어 어디든 데려다줄 수 있을 것 같은 ‘노’를 처음 사용한 모빌 연작이다. 사람들의 움직임 속에서 생겨난 실내 공기의 미세한 움직임을 따라 커다랗고 노란 구(球)가 조금씩 흔들린다. 모빌의 한쪽은 반짝이는 유광 소재, 또 다른 쪽은 담백한 무광으로 이뤄져 조화를 이룬다. 이 호텔의 아트프로젝트를 자문한 윤옥영 서울옥션 상무는 “작가는 음악과 균형에 관심이 많은데 무게의 평형뿐만 아니라 형태와 질감을 통한 시각적 경험의 균형감까지도 고려했다”며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외부 정원이 계절별로 색을 바꿀 때면 자연과 작품이 또 다른 조화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포시즌스호텔서울 로비에 설치된 프랑스 작가 그자비에 베일랑의 2015년 작 ‘모빌 N°25’ 사진 제공=포시즌스호텔서울포시즌스호텔서울 로비에 설치된 프랑스 작가 그자비에 베일랑의 2015년 작 ‘모빌 N°25’ 사진 제공=포시즌스호텔서울


작은 단추를 소재로 경복궁을 형상화한 황란의 ‘하얀 바람’ 사진 제공=포시즌스호텔서울작은 단추를 소재로 경복궁을 형상화한 황란의 ‘하얀 바람’ 사진 제공=포시즌스호텔서울


이곳 로비에 들어섰을 때 눈뿐만 아니라 코로도 자극을 느꼈으려나. 플라워 아티스트 니콜라이 버그만의 꽃이 내뿜는 매력적인 자연의 향기다. 버그만의 꽃집 쪽으로, 꽃내음이 불어오는 쪽으로 따라가다 보면 작가 황란의 ‘하얀 바람’을 만날 수 있다. 25만 개의 단추가 그려낸 경복궁의 자태가 감탄을 넘어 말문이 막히게 하는 작품이다.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는 황 작가는 단춧구멍 하나하나에 핀을 꽂고 망치를 두드리는 수행적 작업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새롭게 문을 연 페이스북 뉴욕 본사에도 그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가장 한국적인 소재부터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까지도 단추로 그려내는 능력자다.



로비 반대편은 ‘쇳가루 화가’로 불리는 김종구 작가의 산수화가 차지했다. 바닥부터 2층 높이의 천장까지 꽉 채운 대작이다. 작가는 커다란 쇳덩이를 갈아서 윤선도의 오우가에 나오는 물·돌·소나무 등의 형태로 새겼다. 쇳가루는 공기와 접하면 산화해 점점 붉어지기 마련인데 이 미세한 변화의 과정을 두고 작가는 “작품이 살아 숨쉰다”고 말한다. 작품 앞 회전문 밖, 그러니까 주차장 진출입구 앞마당에는 최병훈의 돌 설치 작품 ‘일필휘지’가 놓여 있다. 붓으로 획을 그은 듯한 단순한 형태지만 무려 3톤이 넘는 현무암 덩어리를 매끈해질 때까지 갈고 닦는 과정에서 지난한 공이 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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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시즌스호텔서울 3층 그랜드볼룸에 걸린 도윤희의 2015년 작 ‘눈이 나린다. 빛이 부서져 내린다’는 줄여서 ‘스노 폴(snow fall)’로도 불린다. 사진 제공=포시즌스호텔서울포시즌스호텔서울 3층 그랜드볼룸에 걸린 도윤희의 2015년 작 ‘눈이 나린다. 빛이 부서져 내린다’는 줄여서 ‘스노 폴(snow fall)’로도 불린다. 사진 제공=포시즌스호텔서울


결혼식부터 시상식, 각종 행사 등이 열리는 3층 그랜드볼룸을 방문한다면 화가 도윤희의 귀한 작품을 마주할 수 있다. 깊고 맑은 연못 위에 떨어진 하얀 꽃잎들을 보는 듯한 황홀경이다. 물이라면 물 같고, 하늘이라면 또 하늘 같은 영롱한 푸른빛이다. 한동안 시구절 같은 문학적 제목을 즐겨 사용하던 작가가 ‘눈이 나린다, 빛이 부서져 내린다’라는 이름을 붙여준 작품이다. 엄마처럼 가깝게 여겼던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듣고도 실감하지 못하던 작가가 다음 날 아침 화실에서 경험한 신비로운 풍경을 그림에 담았다. 도 작가는 “3월 초 햇빛이 화창하던 그날 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그 비현실적인 장면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슬프다기보다는 더 큰 아름다움으로 한발 더 올라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 날씨와 그 장면을 사랑하는 사람이 보내주는 메시지라 생각하며 순간적으로 드로잉했고, 언젠가 그날의 하늘 크기만 한 작품으로 남기리라 가슴에 품고 있다가 완성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지극히 화려한 그림이지만 묘한 평정심을 준다. 호텔 측은 이 작품과의 조화를 고려해 샹들리에 조명과 바닥 카펫을 정했다고 한다. 상실과 아픔까지도 새로운 도약의 시작이며 또 다른 축복이라 여기는 정신성의 ‘해방’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포시즌스호텔서울 7층에서 만날 수 있는 홍수연의 작품. 사진 제공=포시즌스호텔서울포시즌스호텔서울 7층에서 만날 수 있는 홍수연의 작품. 사진 제공=포시즌스호텔서울


비즈니스 미팅룸들이 있는 7층 엘리베이터 앞 복도와 미팅룸 내부에는 홍수연 작가의 유연하게 움직이는 듯한 추상회화들이 걸려 있다. 밝기와 진하기를 달리한 푸른색들이 겹겹이 포개진 작품이 있는가 하면 회색과 붉은색이 강렬한 대조를 이루는 작품도 눈길을 끈다. 매혹적인 색보다 형태의 질감과 움직임을 느껴보면 좋겠다. 또르르 흘러내리던 물방울이 중력과 장력의 균형점에서 딱 멈춘 듯한, 편안함과 긴장감의 공존을 느껴보자. 작가는 얼음판처럼 매끈하게 만든 캔버스 위에 안료를 올리고, 양팔로 캔버스를 붙들고 움직여가며 물감의 방향을 만들어 형태를 잡았다. 의도와 우연이 공존했기에 더 매력적이다.

포시즌스호텔서울 수영장 내에 설치된 황혜선의 ‘랜드스케이프’ 사진 제공=포시즌스호텔서울포시즌스호텔서울 수영장 내에 설치된 황혜선의 ‘랜드스케이프’ 사진 제공=포시즌스호텔서울


포시즌스호텔서울 수영장 내에 설치된 황혜선의 ‘랜드스케이프’ 사진 제공=포시즌스호텔서울포시즌스호텔서울 수영장 내에 설치된 황혜선의 ‘랜드스케이프’ 사진 제공=포시즌스호텔서울


기회가 된다면 포시즌스호텔의 수영장 방문을 추천한다. 서울의 도심과 궁궐이 내려다보이는 8층 수영장 자체도 독특하지만 눈앞의 북한산·인왕산을 안으로 가져온 듯한 황혜선의 ‘랜드스케이프’가 백미다. 옛 선비들은 나가지 않고 방안에 누워서 그림으로 풍경을 즐기며 와유(臥遊)라고 했는데, 수영하며 음미하는 산의 풍경이라니! 황 작가는 먹으로 그린 듯한 굵고 검은 선(線) 작업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은 먹 기법을 확장해 전통 동양화의 공기원근법을 구현한 셈이다. 가까이 있는 것은 진하게, 멀리 있는 것은 옅게 표현해 색 자체로 거리감을 드러내는 기법이다. 작가는 “벽에 걸렸을 뿐만 아니라 수영장 물에 비친 모습까지도 고려해 작업했다”면서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할 때 한국의 산세가 바다와 강에 비친 모습을 본 적이 있다면 이곳에서 그 반가움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 기대했다”고 말했다. 환대의 마음을 품은 작품들이, 그림 앞에 선 사람들 모두를 추앙한다.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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