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뒷북경제] 빅스텝 하자니 경기·부채 걱정, 안 하자니 물가가 고민

美 자이언트 스텝에 韓 빅스텝 여부 관심

물가 상승·한미 금리 역전에 가능성 제기

경기 둔화 가능성·가계부채 위험에 고민

이창용 총재 "3~4주 간 시장 반응 볼 것"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가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면서 한국은행도 빅스텝(0.50%포인트) 여부를 선택해야 할 상황으로 내몰렸습니다. 이미 시장 관심은 7월 13일로 예정된 정례회의에서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를 올릴지 말지가 아니라 빅스텝을 할지 말지로 옮겨갔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빅스텝을 한 적 없는 한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연준이 정책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면서 한미 금리가 같아진 16일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를 대응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이 총재는 빅스텝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다음 금통위까지 3~4주가 남았기 때문에 많은 변화가 있을 수 있다”며 “시장 반응을 보고 인상 폭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은에서 처음으로 빅스텝 불씨를 지핀 장본인이지만 상대적으로 신중한 입장을 보인 것입니다.

한은은 앞서 연말 기준금리가 2.50~2.75%라는 시장 전망에 대해 합리적이라고 평가하면서 올해 남은 네 번의 금통위에서 모두 금리를 올릴 수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한은은 7·8월과 10월·11월 금리 결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4~5월부터 최대 6번 연속 금리를 올리는 것도 이례적인데 유독 빅스텝만큼은 조심스럽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 백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한은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 백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한은


한은이 빅스텝을 고민하는 첫 번째 이유는 경기 둔화 가능성입니다. 9일 박종석 한은 부총재보는 빅스텝 질문에 “물가가 조금 더 오르고 있긴 한데 그래도 여전히 경기 면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나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생긴 부작용, 중국 경기 둔화 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빅스텝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베이비스텝(0.25%포인트)이 적절하다고 평가한 이유로 경기 측면을 고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로 한은(2.7%)보다 낮출 만큼 경기 둔화 우려는 커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늘어난 가계부채를 들 수 있습니다. 1분기 가계부채는 1752조 7000억 원입니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4분기까지만 해도 196.2%였는데 불과 2년 만인 지난해 4분기 220.8%로 급증했습니다. 민간신용 증가율은 10%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습니다.



가계대출의 78%(잔액 기준)가 변동금리 대출인 만큼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이자 부담도 큽니다. 한은은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할 경우 그만큼 대출 금리가 올랐다고 가정했을 때 연간 가계 이자 부담이 3조 3000억 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빅스텝이라면 한 번에 6조 6000억 원이 늘어나는 셈입니다. 빅스텝으로 기업 대출 금리도 급격히 상승한다면 가뜩이나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부담이 커진 기업 경영 어려움이 가중돼 실물 경제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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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대비 5.4%로 13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는 등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가운데 17일 서울 시내 한 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성형주 기자 2022.06.17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대비 5.4%로 13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는 등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가운데 17일 서울 시내 한 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성형주 기자 2022.06.17


이러한 이유에도 한은이 빅스텝을 고민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물가 때문입니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4%로 2008년 8월(5.6%) 이후 가장 높습니다. 한은은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3.1%에서 4.5%로 한 번에 1.4%포인트나 높였습니다. 이는 2008년 7월 전망한 4.8% 이후 13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문제는 물가 상승세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8일 브렌트유와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각각 123.58달러, 122.11달러로 120달러를 넘었습니다. 두바이유도 118.94달러(10일)까지 올랐습니다. 국제유가 상승 폭이 확대된 만큼 월 단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대를 돌파할 가능성도 큰 상황입니다. 5월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일부 금통위원은 한은이 전망한 4.5%보다 올해 물가 상승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았습니다.

기대인플레이션도 주목해야 합니다. 일반인 단기(향후 1년) 기대인플레이션은 3.3%로 9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면 경제주체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비용 부담을 제품 가격에 전가하면서 2차 파급효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은은 이미 기대인플레이션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일부 작용하고 있으며 앞으로 영향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를 잡기 위해서는 빅스텝 등으로 기대인플레이션 확산을 방지해야 합니다.

한미 금리 역전도 고민해야 할 지점입니다. 미 연준(1.50~1.75%)과 한은(1.75%)의 정책금리는 같습니다. 미 연준이 다음 달 0.50%포인트 또는 0.75%포인트를 올리겠다고 예고한 만큼 정책금리는 2.0~2.25% 또는 2.25~2.50%로 높아질 수 있습니다. 7월 한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2.0%가 되면 한미 금리가 역전됩니다. 미 연준이 연말 금리를 3.4%까지 예상해 한미 금리 역전은 장기화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한미 금리 역전이 발생하면 외국인 투자 자금이 유출될 수 있습니다. 금통위서도 어느 정도 내외금리차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다만 한은은 과거 한미 금리 역전 사례 등을 봤을 때 급격한 자금 유출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다음 달 회의까지 금통위 내부에서는 빅스텝 여부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예상됩니다. 5월 금통위부터 이러한 조짐이 감지됩니다. 한 금통위원은 “기준금리 연속 인상에 따라 국내 경기회복세 둔화, 민간부채의 상환 부담 증가, 취약부문 부실화 등의 부작용이 우려되나 여러 지표를 점검해 본 결과 아직 감내할 수준”이라며 “앞으로 통화정책은 완화 기조를 빠르게 축소하는 방향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빅스텝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반대로 속도 조절을 주문한 금통위원도 있습니다. 해당 금통위원은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같은 총량 지표뿐 아니라 과거 성장 추세에 비해 크게 뒤처진 부문의 회복 여부에도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라며 “향후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신중하게 조절하면서 성장 손실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총재가 다음 회의까지 3~4주 동안 각종 지표를 보고 빅스텝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만큼 당분간 물가나 성장 지표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달 29일 나오는 6월 기대인플레이션과 다음 달 5일 통계청이 발표하는 6월 소비자물가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나올지 봐야 합니다.


조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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