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사카모토 유키오






2010년 10월 사카모토 유키오 일본 엘피다메모리 사장이 “대만 반도체 업체의 주식을 사들이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는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엘피다는 심한 누적 적자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만 업체를 활용해 위기를 타개하려는 사카모토의 전략은 효과를 거두는 듯했다. 이듬해 엘피다의 세계 시장점유율이 반등했다. 하지만 계속된 D램 가격 하락과 삼성전자 등의 공세에 밀려 엘피다는 2012년 파산했다. 당시 일본 언론들은 “사카모토의 잘못된 판단이 파산의 최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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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전 사장은 반도체 전문가로 ‘일본 D램 역사의 산증인’으로 불렸다. 그는 1947년 일본 군마현에서 태어나 일본체육대에서 체육학을 공부했다. 한때 야구 감독의 꿈을 꿨으나 이를 접고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일본 지사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반도체 전문 서적을 탐독하는 등 남다른 열정을 쏟아 부사장까지 승진했다. TI를 나온 그는 고베제강 반도체본부장, 일본파운드리 사장 등의 경험을 더 쌓은 뒤 2002년 엘피다메모리 사장에 취임했다.

사카모토는 엘피다를 10년 동안 이끌며 글로벌 시장점유율 15%를 넘나드는 세계 3위 D램 업체로 키워냈다. 엘피다가 무너진 뒤 그는 2015년 중국과 대만 자본을 끌어들여 D램 업체 사이노킹을 설립해 재기를 노렸으나 실패했다. 2019년에는 중국 반도체 그룹 칭화유니의 수석부사장을 맡았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최근 그의 행보에 대해 일본 내에서는 ‘반도체 기술을 중국에 넘기려는 스파이’라는 냉소적 시각도 존재한다.

중국 반도체 산업이 한국을 맹추격하는 가운데 올해 3월 설립된 중국의 국영 반도체 회사 스웨이슈어가 최근 “일본 반도체 거물로 불리는 사카모토 전 사장을 영입했다”고 밝혔다. 사카모토는 “내 인생의 마지막 커리어가 될 것”이라며 재기 의지를 보였다. 각국은 기술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핵심 인재 영입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도 ‘한번 멈추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각오로 초격차 기술 및 고급 두뇌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반도체 강국’ 위상을 지킬 수 있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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