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고물가·고금리 등 이른바 ‘3고(高)’ 시대에 접어들면서 판매 부진으로 재고를 쌓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플라인체인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 2분기 재고 회전 일수는 평균 94일로 지난해보다 2주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년보다 2주 가량 늘어난 것으로 역대 최고치다. 재고 회전 일수는 보유한 재고가 매출로 발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으로 기간이 길수록 비용 부담은 커진다.
실제 롯데하이마트·전자랜드 등 오프라인 가전 양판점의 올해 2분기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할 전망이다. 대형마트도 상황은 비슷하다. 국내 한 대형마트에 따르면 올해 5~6월 가전제품 매출을 분석한 결과 에어컨 같은 여름 가전은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약 8% 증가했지만 TV·세탁기 등 계절에 상관없는 대형 가전의 매출은 7~10% 감소했다.
현대차·기아의 글로벌 재고 수준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직 글로벌 재고는 1개월 수준으로 낮지만 이는 차량 반도체 수급난에 따른 생산 차질로 인한 결과다. 최근 급등했던 중고차 거래 가격이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완성차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재고 증가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제조업의 올 2분기 실적이 1분기보다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LG전자의 2분기 매출액,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각각 19조 4354억 원, 8851억 원으로 1분기 대비 7.9%, 53.5%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LG디스플레이는 올 2분기 영업손실이 590억 원으로 적자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케미칼의 2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는 618억 원으로 전 분기 대비 25.3% 줄어들 것으로 관측됐다. 포스코홀딩스의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2% 낮아질 것으로 분석됐다.
대표적 산업 소재인 철강도 수요가 급감하며 재고가 쌓이고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이달 말 국내 열연 제품 유통가는 한 달 사이 2% 안팎 하락했다. 국산 제품보다 저렴한 수입품이 밀려들면서 포스코와 현대제철도 다음 달 유통향 후판·열연 제품의 가격 인하를 예고했다. 화학업계 역시 전방 산업의 수요 부진을 우려하고 있다. 당초 올해 1분기 중으로 예정된 현대오일뱅크의 충남 대산 중질유분해복합설비(HPC) 생산 라인 상업 가동은 유가 급등에 따른 부담 등으로 미뤄진 상태다. 올해 1분기 나프타 평균 가격은 톤당 약 104만 원으로 지난해 평균 가격에 비해 43% 뛰었다.
가구·인테리어 업계는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위축으로 코로나19 시기에 누린 호황이 끝났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소비와 주택 시장이 동시에 쪼그라든 탓이다. 업계 1위인 한샘은 올해 1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4.9% 감소한 5260억 원, 영업이익은 60.2% 줄어든 100억 원을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한샘의 2분기뿐 아니라 하반기 성적표 역시 개선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LX하우시스도 1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1.7% 증가한 8614억 2800만 원이었지만 영업이익은 76.4% 줄어든 69억 3500만 원이었다. 현대리바트의 1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1.4% 늘어난 3688억 원, 영업이익은 70.3% 감소한 29억 원을 기록했다.
가구 업계는 일제히 여름 정기 세일에 돌입했지만 얼어붙은 소비심리로 인해 재고 소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가구의 경우 구매 주기가 긴 데다 최근 리모델링·재건축 등 주택·이사 시장이 위축됐고 경기 침체로 인해 다들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며 “생필품을 제외하고는 모든 제품의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