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는 폭풍이 지나가면 다시 원래대로 일어나 완전히 회복된다. 반면 튼튼한 떡갈나무는 강한 바람을 견뎌내지만, 더 거센 폭풍을 만나면 꼼짝없이 부러지고 만다. 이처럼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없어 한번 쓰러지고 나면 쉽사리 회복할 수 없다.”
신간 ‘회복탄력 사회’가 프랑스 작가 장 드 라퐁텐의 우화 ‘떡갈나무와 갈대’에 빗대어 전하는 핵심 메시지다. 책은 코로나19 팬데믹은 전초전에 불과하며 생명공학의 재앙, 기후변화, 사이버 공격 등 앞으로 인류에게 수많은 위기가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때문에 책은 개인과 사회, 지구촌 전체가 충격에 대응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며 “회복탄력성이 포스트 코로나19 사회를 설계하는 북극성과 같은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국제 금융시장과 거시경제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마커스 브루너마이어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다. 그는 버블, 유동성, 통화 가격 안정성 분야의 권위자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가능성을 예측한 바 있다. 책은 팬데믹 이전까지 우리 사회는 ‘적시(just in time) 대응’이라는 원칙 아래 유동성은 극대화하고 고정성을 최소화하는 등 비용 감소만 중시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만약의 경우(just in case)’를 대비해 여분·초과분과 같은 가외성(redundancy), 완충장치, 중첩구조 등 이전에는 비효율적이라고 여겼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성장을 포기해야 회복 탄력성을 얻을 수 있고 성장 속도가 빠를수록 사회가 무너지기 쉽다는 생각은 오해라고 반박한다. “오히려 회복탄력적인 사회는 충격을 더 잘 흡수해 장기적으로 더 건설한 성장을 누릴 것이다.” 개인이나 기업이 재기할 수 있는 사회는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잘된 사회인만큼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창조적 파괴’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기업들이 투자, 혁신, 연구개발(R&D) 등과 같은 모험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실제 한 나라의 경제 성장이나 스타트업의 발전 경로를 보면 일시적으로 후퇴하더라도 회복력을 보일 때 장기적으로 더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회복탄력 사회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바로 충격에도 사회가 존속할 수 있는 메커니즘, 즉 지속가능한 사회계약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공권력, 시장, 사회적 규범 간에 위기의 성격에 따라 적정한 역할을 배분해야 한다. 가령 정부가 위기를 이유로 과도하게 강제력을 행사하면 시장의 자원 배분 기능과 혁신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팬더믹 위기 때 백신 접종,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에 대해 미국인 일부가 반발하면서 방역 효과가 떨어진 데서 보듯 신뢰에 바탕을 둔 사회적 규범 정비도 필수이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는 개인주의적 사고로는 회복력에 한계가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한 사회가 존속하려면 개인을 넘어 집단의 기능이 건강해야 한다”며 “사회계약을 통해 질서를 형성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서로 피해를 주기 쉽다”고 말한다.
저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몰고 올 구조적 변화와 대처 방안도 제시한다. 전염병 대유행으로 정부의 각종 규제가 느슨해지고 재택근무, 온라인 학습, 원격진료, 생명공학 등에서 혁신이 일어난 점은 긍정적이다. 문제는 혹독한 경기 침체로 인한 ‘상흔 효과’이다. 그는 팬데믹이 사람들 사이에 위험을 감수할 의지와 낙관론을 꺾어버리고 실업 장기화로 인적 자본이 쇠퇴하고 기업들은 과잉부채의 압박에 놓여있다며 “경제 회복을 저해하고 장기 성장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브루너마이어는 대대적인 돈 풀기로 각국의 공공부채가 급증하면서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 순차적으로 찾아오는 ‘톱니형 인플레이션’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 물가가 오르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데 정부가 더 높아진 국채 이자 부담을 상쇄하기 위해 국채 발행량을 늘리면 총수요를 더 자극해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책은 ‘중진국 함정’에 빠진 신흥국, 미중간 패권 전쟁, 보호무역주의 등 팬더믹 이후 변화하는 세계 질서를 분석한 뒤 글로벌 회복탄력성을 위한 과제도 제시한다. 특히 기업들에 대해 “글로벌 공급망에 중대한 변화가 불가피하다”며 비용 최소화에만 골몰하지 말고 회복탄력성을 최우선 고려해 공급업체를 다변화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앞으로 예측할 수 있는 충격으로 중요한 기반시설을 마비시키는 사이버 공격, 인간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인공지능(AI), 유전학과 생명공학의 발전에 따른 초인의 등장, 유전학적으로 설계된 무기, 항생제도 듣지 않는 슈퍼 버그, 기후 재앙 등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는 “나머지 충격은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미지의 영역”이라며 “세상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충격을 피할 수 없고 그렇기에 사회의 회복탄력성, 즉 다시 일어서는 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실 회복탄력성은 불과 반세기만에 고도 성장을 이루고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 경제를 평가할 때 국내외 경제학자들이 꼽는 핵심 성공 요인이다. 브루너마이어의 지적대로 한국 경제는 1970년대 사채 파동과 기업도산, 오일쇼크, 중화학공업 과잉투자와 기업구조조정, 카드 사태 등 숱한 위기를 거치며 오히려 경제 구조가 더 탄탄해졌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금 모으기 운동’이라는 전국민적 응집력을 발휘하기로 했다.
하지만 개발 독재 시대에 정부·기업·국민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사회 계약관계 모델이 파탄난 지 30여년이 흘렀는데도 새 시스템 정립은 요원한 상황이다. 그 결과는 사회적 갈등 심화와 성장 동력 후퇴다. 이런 가운데 책은 위기에 강한 지속가능한 경제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1만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