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125년전 남극 탐험의 길…경험 못한 극한이 찾아왔다

■미쳐버린 배

줄리언 생크턴 지음, 글항아리 펴냄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곳, 남극은 과학이 발달한 지금도 위험한 곳이다. 세종·장보고 과학기지를 비롯해 수많은 과학기지들의 연구원들은 목숨을 걸고 과학 발전에 이바지하는 중이다. 지난 2003년 세종기지의 한 대원이 위기에 처한 다른 월동대원을 구하고 자신은 숨지는 비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만큼 위험한데 125년 전은 오죽했을까. 신간 ‘미쳐버린 배’는 1897년 남극 탐사에 나선 벨기에의 원정대, 벨지카 호의 2년 간의 탐험을 옆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한다.



우리는 흔히 남극의 역사라면 남극점에 최초로 도달한 로알 아문센과 경쟁자 로버트 스콧을 떠올린다. 그러나 아문센이 남극점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1897년 벨지카 호 탐사에 참여해 경험을 미리 쌓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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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사령관 아드리앵 드 제를라슈와 일등 항해사 아문센, 의사 프레더릭 쿡 세 명의 시선에서 남극 탐험을 보여준다. 항해 일지와 일기, 각종 기록 등을 주요 사료로 활용했고, 기록들 사이의 간극을 철저한 취재와 조사, 필력으로 메꿨다.

19명의 탐사대원들은 저마다 꿈을 갖고 탐험에 나섰다. 애국심·명예욕·금전욕 등 다양한 욕망이 배 안에 가득 찼다. 그러나 이들의 꿈은 백일몽이었다.

예상보다 격렬했던 남극의 추위와 자연의 거대함에 벨지카 호는 남극해에 갇혔다. 이들은 굶주림과 괴혈병으로 전원 사망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선원들은 육체적으로는 극한의 고통과 추위에 시달렸고, 정신적으로는 절망과 트라우마에 빠졌다. 결국 이들은 선원 두 명을 잃었다.

저자는 탐험대가 남극을 벗어난 이후의 삶도 추적한다. 그들에게 순수한 영광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문센은 남극점 최초 도달이라는 영예를 얻었으나 편집증에 시달렸고, 쿡은 역사에 사기꾼으로 기록되어 결국 감옥에서 생활하게 된다. 갑판장 톨레프도 정신병을 얻어 평생 수용소 같은 농장에서 생활한다.

최초의 목표였던 남극점의 도달에는 실패했지만, 이들의 위대한 도전은 많은 과학적 성과를 남겼다. 펭귄과 심해어, 동·식물 표본 등이 새로 이들에 의해 발견됐고, 기상 및 해양학 관측 기록들은 학문의 새 지평을 였었다. 이들의 탐험은 남극의 중립화에 큰 역할도 했다. 그들의 도전 정신과 연대는 오늘날 미국 항공우주국 대원들의 귀감이 되는 것을 넘어서 도전을 두려워하는 현대인의 모범이 되고 있다. 2만 2000원.


한순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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