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성악을 하는 이유는 전 세계에서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기 위해서이지요. 제가 부르는 아리아가 폐쇄적인 나라, 억압하는 국가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지난달 24일 한국 발달장애 성악가로는 처음으로 뉴욕 카네기홀 공연을 하고 귀국한 소프라노 박혜연(40) 씨는 11일 서울 서초동 한국발달장애인문화예술협회 아트위캔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음악은 고통받는 사람들의 치료 약”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5세 때 자폐성 장애 판정을 받은 박 씨는 발달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성악에 진출해 이 분야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우크라이나·체코·루마니아·몰도바 등 유럽 오케스트라와 수차례 협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스페인 알메리아 디에시스 아카데미 콩쿠르에서는 성악 부문에서 2위에 올랐고 올 2월 온라인으로 개최된 해외 성악 콩쿠르 ‘뮤직 인 더 월드 로마’에서는 비장애인들과 겨뤄 성악 부문 3위에 입상하기도 했다. 장애인 성악가가 아닌 일반 성악가로서 인정받은 것이다.
실력을 인정받기는 했지만 큰 무대에 서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발달장애인의 특성상 공연 중 무슨 일을 벌일지 아무도 모른다. 카네기홀 공연 때도 주위에서 걱정을 많이 했다. 엄마도 같이 가지 못했는데 공연 중 갑자기 고함을 치면 어쩌나, 생리 현상을 참지 못하고 나가 버리면 어쩌나…. 다행히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한다. 어머니 권애경 씨는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이 기립 박수를 쳤다고 하더라”며 “그 순간 같이 갔던 내 친구가 펑펑 울었다고 한다”고 당시의 감격을 전했다.
성악가로서 박 씨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어릴 때부터 성악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파악한 부모가 그를 예술고에 진학시키려 했지만 학교 측의 만류로 결국 일반고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고 생활도 편치는 않았다. 장애 학생에 대한 학생들의 거부감이 심해서다. 권 씨는 “나중에 많은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해외 연수도 가고 공연도 갈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힘들었다”며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자괴감도 많이 들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박 씨에게 성악은 단순히 자신의 재능을 펼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벽 뒤에 꼭꼭 숨어 있던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통로였다. 그가 “장애라는 아픔을 겪고 있기에 내 노래에도 이러한 아픔이 담겨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성악을 왜 하느냐는 질문에는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노래하는 이유는 훌륭한 성악가들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분들도 저처럼 많은 고생을 했으니 코로나19가 끝나면 마스크를 쓰지 않고 같이 식사를 하고 싶다는 희망 사항도 전했다. 어머니 권 씨는 이 얘기에 대해 “인정받는 사람들과 함께 무대에 서고 싶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아픔을 겪었기 때문일까. 박 씨는 인터뷰 내내 음악을 통한 치유를 강조했다. “노래를 부르면 북한 주민들이 생각나요. 자유를 잃고 억압받는 다른 나라 사람들도 떠오르죠. 조선족이 있는 중국 연변에서도 노래를 불러 그들을 위로하고 싶어요. 그들은 음악으로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이건 죄악이에요. 제가 부르는 오페라 아리아가 이들을 보듬어줬으면 합니다.” ‘악성’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의 주인공처럼 예쁜 여자보다 용감한 여자가 좋은 것도, 경쾌하면서도 민족적 서사를 담은 오페라를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애가 장벽만은 아니다. 발달장애는 어느 한 분야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측면도 있다. 박 씨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외우는 기술은 남들보다 월등하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성악가 조수미, 마리아 칼라스 등의 노래를 틀어 놓고 그 사람의 성량과 스타일대로 따라 하면서 성악 능력을 키웠다고 한다.
권 씨는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후 혼란스러웠지만 혜연이와 주위의 도움으로 이겨내왔다”며 “이제는 음악이라는 매개체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기적”이라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