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제주포럼에서 기업인들에게 “규제는 선진국 정도만 적용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추 부총리는 올 하반기까지 물가 안정에 모든 힘을 쏟겠다며 기업들의 협조도 당부했다.
추 부총리는 13일 제주 서귀포 해비치호텔에서 열린 ‘제45회 대한상의 제주포럼’ 개막식 강연자로 참석해 윤석열 정부의 이 같은 경제정책방향을 소개했다.
추 부총리는 “안전, 건강, 소비자 보호 등을 제외한 웬만한 규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개선하겠다. 선진국에 없는 것은 우리도 없어야 한다”며 “규제 완화를 실제로 체감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이번에는 대통령·국무총리·장관들이 직접 나서서 5년 내내 해보려고 한다”고 다짐했다.
최근 세계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현상과 관련해서는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공급망 애로 등으로 국제 에너지·곡물 가격이 가파르게 올랐다. 우리 생활, 기업 현장 곳곳에서 많은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며 “정부도 물가 안정을 미시·거시 정책 모든 부문에서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로 물가와 임금이 번갈아 올라가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도 있다”며 “조금 힘드시겠지만 기업도 생산성 향상을 통해 원가 상승 요인을 조금 흡수해 달라”고 호소했다.
추 부총리는 또 “올 하반기까지는 물가를 잡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라면서도 “연말쯤 물가가 잡혀도 경기 침체가 그다음 숙제”라고 걱정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해소하는 정책 방향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게 고민이라는 뜻이었다.
추 부총리는 이달 21일 세법개정안 발표 계획을 소개하면서 법인세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박정희 정권부터 지금까지 법인세를 올린 유일한 정부인데, 세금을 22%에서 25%로 올렸다”며 “(문재인 정부처럼) 빚 내서, 세금 많이 걷어서 일자리 창출하고 투자 늘리고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비판했다. 추 부총리는 이와 함께 ‘민간주도성장’을 수차례 부각하면서 △재정준칙 법제화 등 공공 개혁 △국민연금 개선 등 연금 개혁 △주 52시간제 유연화 등 노동 개혁 △산업 인력 육성 등 교육 개혁 △금융 혁신 △서비스업 부가가치 증대 등을 공언했다. 형벌 중심의 중대재해처벌법은 현장 상황에 걸맞게 개선하고 종합부동산세는 인하하겠다는 계획도 선보였다.
이 행사는 1974년 ‘제1회 최고경영자대학’으로 시작한 국내 최대 규모의 기업인 하계 포럼이다. 세계적인 경제 석학과 정재계 명사들이 참석해 경제 흐름을 설명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자리다.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19 유행으로 개최되지 못하다가 3년 만에 열렸다. 지난해 3월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새 수장에 오른 뒤에는 처음이다. 이날 포럼에는 최 회장을 비롯해 기업인 600여 명이 참석했다.
최 회장은 개회사에서 고대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서 부피의 개념을 알아낸 일화도 거론하면서 “멍 때리면서 생각의 유연함을 기르고 그 과정에서 ‘유레카’ 순간을 찾아 새로운 생각의 단초를 갖자”고 제안했다. ‘붕괴-금융위기 10년, 세상은 어떻게 바뀌었나’의 저자로 유명한 경제사학자 애덤 투즈 컬럼비아대 교수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 심화할 것이라며 이 현상이 한국에도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