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장소가 갖는 다양성에서 영감…"55년간 작업실 없어요"

[다니엘 뷔렌 대구미술관 개인전]

단순한 색·조각 대칭 공간 구성

"1층서 관람과 2·3층 관점 달라

새로운 각도로 내 작품 즐겼으면"

거울 활용 신작 등 29점 전시도

국내 미술관 최초로 다니엘 뷔렌 개인전을 개최한 대구미술관 1층 어미홀에 설치된 '어린아이의 놀이처럼' 전경. /사진제공=대구미술관국내 미술관 최초로 다니엘 뷔렌 개인전을 개최한 대구미술관 1층 어미홀에 설치된 '어린아이의 놀이처럼' 전경. /사진제공=대구미술관




국내 미술관 최초로 다니엘 뷔렌 개인전을 개최한 대구미술관 1층 어미홀에 설치된 '어린아이의 놀이처럼'을 3층에서 내려다 본 모습. /대구=조상인기자국내 미술관 최초로 다니엘 뷔렌 개인전을 개최한 대구미술관 1층 어미홀에 설치된 '어린아이의 놀이처럼'을 3층에서 내려다 본 모습. /대구=조상인기자


세계 최고 권위의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최고영예인 황금사자상까지 받은 거장이 작업실이 없다 한다. 대신 작품이 장차 놓이게 될 장소에서 영감을 얻고, 그곳에서 작업한다. 프랑스 태생의 세계적 미술가 다니엘 뷔렌이 대구에 온 이유다.



“작품을 만드는 장소에서, 장소가 가지는 다양성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딱히 정해진 규칙을 갖고 작업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난 55년간 작업실이 없었던 게 그런 까닭이죠.”

단순한 형태와 선명한 색채만으로 공간의 의미를 들었다 놨다, 뒤집었다 엎었다 하는 비결이다. 뷔렌이 국내 미술관 최초의 대규모 개인전을 위해 대구에 왔다. 전시 개막을 앞두고 만난 지난 11일 오후에도 84세의 원로작가는 미술관 곳곳을 누비며 작품을 점검하느라 분주했다. 대구의 인상에 대한 질문에 “미술관에 도착해 작업밖에 안 해서 말씀드리기가 어렵다”고 답한 이유다.

작품 설치 상태를 점검하느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는 프랑스 미술가 다니엘 뷔렌 /대구=조상인기자작품 설치 상태를 점검하느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는 프랑스 미술가 다니엘 뷔렌 /대구=조상인기자


그렇게 공들인 대표작 ‘어린아이의 놀이처럼’이 1층 전시장 어미홀 전체를 차지했다. 원통형,삼각기둥,속이 둥글게 뚫린 입방체,아치 등 아이 장난감 같은 형태의 조각들 104점이 대칭되게 놓였는데, 40m 길이 전시장의 절반은 하얀색 나머지 반은 현란한 색채로 이뤄져 있다. 그 안에 들어선 관객은 색깔 있는 세상의 다채로움과 색 없는 세상의 생경함을 넘나들며 체험할 수 있다. 손안에 들어올 법한 조각이 최대 6m 높이까지 쌓였으니 거대한 크기에서 잠시나마 어린아이의 시선을 느껴볼 수도 있겠다. 작품은 지난 2014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현대미술관에서 첫선을 보인 후 나폴리,멕시코시티,시드니에 이어 아시아 최초로 대구에 전시됐다.



작가 뷔렌은 “1층에서 작품 사이를 걸어다니며 크기를 가늠하면서 감상할 수 있지만 2,3층으로 올라가 내려다보면서 다른 관점으로도 볼 수 있는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공간의 유연성이 풍부한 대구미술관에서 새로운 각도로 내 작품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작품을 처음 제작했을 때 그는 “계산된 것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 맑고 즐거운 복합성이 가장 어린아이다운 것”이라며 “이는 대다수가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리는 선천적인 복합성인데, 그것은 재능·천진무구·순수함도 아닌 ‘형’과 ‘색’에 대한 감각을 말하는 것이기에 ‘어린아이의 놀이처럼’은 ‘고도의 놀이처럼’이라는 말과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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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미술관 최초로 다니엘 뷔렌 개인전을 개최한 대구미술관 1층 어미홀에 설치된 '어린아이의 놀이처럼' 설치 전경. /대구=조상인기자국내 미술관 최초로 다니엘 뷔렌 개인전을 개최한 대구미술관 1층 어미홀에 설치된 '어린아이의 놀이처럼' 설치 전경. /대구=조상인기자


뷔렌의 트레이드 마크는 ‘줄무늬’다. ‘어린아이의…’에서도 직육면체의 가운데를 둥글게 파 원기둥을 빼낸 것 같은 자리에 예의 그 ‘줄무늬’가 배치돼 있다. 뷔렌은 1968년 봄 파리에서 광고판을 걸고 다니는 샌드위치맨에게 줄무늬 패널을 짊어지고 다니게 하는 길거리 퍼포먼스를 벌였다. 현대미술의 영역을 미술관 바깥으로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중요한 사건이다. 이후 뷔렌은 공공장소인 거리를 캔버스 삼아 건축물과 사람들까지도 작품의 일부로 만들었다.

1986년에는 리슐리외의 저택이었고 이후 루이14세가 잠시 살기도 했던 파리 팔레루아얄(Palais Royal)의 안뜰에 흑백 세로 줄무늬 원기둥 260개를 설치하고 ‘두 개의 고원’이라 명명했다. 허물어지고 기둥만 남은 고대 신전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격한 논쟁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관광명소가 됐다. 그 해 베니스비엔날레의 프랑스 파빌리온 대표작가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뷔렌은 지금까지 “거의 매주 각기 다른 나라에서 전시가 열릴 정도로” 쉼 없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미술가 다니엘 뷔렌 /사진제공=대구미술관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미술가 다니엘 뷔렌 /사진제공=대구미술관


그의 줄무늬는 주로 8.7㎝, 신용카드 너비와 같다. 반드시 가로가 아닌 세로 줄무늬다. 그 이유에 대해 작가는 “세로가 가장 중립적인 방향이라, 세로로 있는 것을 볼 때는 부여할 수 있는 다른 의미가 없다”면서 “예를 들어 가로로 줄을 놓으면 풍경이나 지평선이 만들어진다는 등 다른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데 그것을 피하기 위해 세로줄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기하학적 기본 도형 만을 사용하는 이유 역시 “동그라미·세모·네모는 그 자체의 의미 말고는 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작가의 간섭을 최소로 할테니, 관람객이 보이는대로 즐기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국내 미술관 최초로 다니엘 뷔렌 개인전을 개최한 대구미술관의 전시 전경 /대구=조상인기자국내 미술관 최초로 다니엘 뷔렌 개인전을 개최한 대구미술관의 전시 전경 /대구=조상인기자


안쪽 전시장에는 거울이 사용된 최신작 등 29점이 공개됐다. 작가는 1995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의뢰받은 작업에서 해당 장소의 가구와 거울까지도 작품의 일부가 된 ‘거울로 파열된 오두막’을 선보인 이후로 거울을 작품에 접목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공간을 확장하기 위해 거울을 사용하고, 빛을 활용하기 위해 유리나 창문같은 투명한 소재를 많이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년 1월 29일까지 열린다.


글·사진(대구)=조상인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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