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환율이 달러당 1310원 안팎을 오가는 판에 국민연금이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환율이 치솟는 와중에도 국민연금은 해외 주식 투자 등을 위한 달러 환전에 매몰돼 원화 가치 하락을 부추기는 데다 환 헤지도 거의 하지 않아 향후 수익률에 대한 우려마저 높아지고 있다. 어느 때보다 기금 운용의 묘가 필요하지만 이사장과 소관 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공석인 가운데 국민연금이 모럴해저드에 가까운 투자 행태를 보인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6일 금융·외환시장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올해 해외투자를 위해 현물환 시장에서 320억 달러를 환전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보다 40억 달러나 늘었다. 국민연금은 통상 해외투자에 필요한 달러를 외환시장에서 현물로 사들이기 때문에 환율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되기 쉽다.
문제는 미국의 긴축 가속화, 수입 물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심화 등이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는데도 국민연금의 환전 수요가 기계적으로 급증한다는 데 있다. 시장에서는 달러 환전 수요가 2023년 340억 달러, 2024년 350억 달러 등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 결과 미국 재무부는 사상 처음으로 올해 6월 환율보고서에서 국민연금이 원화 가치 하락의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국민연금이 해외투자에 필요한 외화를 주로 현물환으로 매수하면서 환율의 구조적 절하 압력으로 외환 유출과 환율 절하가 서로 영향을 주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았다.
특히 환율이 13년 만에 1300원을 넘었는데도 환 헤지를 하지 않아 환 손실까지 예상된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현 수준의 환율에서 환 헤지 없이 해외 투자에 나선다면 수익률이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며 “국민연금이 그간 관행적으로 해오던 투자 패턴을 환율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그대로 답습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런 비상 상황에 책임자가 없는 것도 화근을 키운다. 윤석열 정부에서 지명된 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이미 두 명이나 자질 문제로 낙마했다. 국민연금 이사장도 석 달째 공석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나라 전체적으로 바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국민연금도 시장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데 책임지는 것이 무서워 공직자 어느 누구도 말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