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미술 다시 보기]라오콘의 발견

신상철 고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







18세기 프랑스 사회에서 폐허는 지적 탐구의 대상이었다. 새로운 고대 유적의 발견과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당대 프랑스인들은 폐허가 지닌 역사적 가치에 주목했다. 이들은 문헌 자료처럼 폐허 상태의 건축물 또한 과거에 대한 지식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시대 지식인들에게 폐허는 인류가 살아온 시간의 흔적이자 역사의 증거물이었다. 인류 역사가 투영된 폐허의 공간은 지나간 옛 문명의 영광을 현재 세대에 상기시켜주는 동시에 인류가 시도한 모든 노력들이 결국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허망함의 상징이기도 했다. 18세기 프랑스 화단에서 이러한 폐허의 미학을 가장 잘 구현한 화가는 위베르 로베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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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1773년에 제작한 ‘라오콘의 발견’은 파리에 실재하는 건축물을 폐허 상태로 상상해 묘사한 일종의 ‘예견된 폐허’를 주제화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당대 미학적 모델로 부각된 고전 미술의 걸작 라오콘과 폐허 상태의 루브르궁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공간을 창출했다. 프랑스 절대왕정 체제의 상징과도 같은 루브르궁의 내부가 오랜 시간 동안 방치돼 파손된 모습으로 구현된 이 작품은 동시대인들에게 매우 낯설고 충격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여졌다. 위베르 로베르는 왜 이 그림 속에서 폐허 상태의 루브르를 묘사한 것일까. 이 그림이 제작되던 1773년은 아직 부르봉 왕가의 왕정 체제가 건재하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이 해 프랑스 사회에서 루브르궁 내에 공공 미술관을 건립하는 계획이 본격화됐다는 점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화가는 긴 터널 형태의 폐허 속에 라오콘의 형상을 배치하는 구성을 통해 미술관 건립에 대한 당시 프랑스 미술계의 요구와 기대를 반영하고자 했다. 이 작품 속 폐허는 역사의 위대함을 생각하게 하는 회화적 장치였으며 세상의 모든 것은 역사와 함께 사라지고 오직 공간과 시간만이 지속된다는 불변의 진리를 전달하는 매개체였다. 그렇다면 예술은 어떠한가. 그것은 루브르의 현재가 대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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