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국민연금發 환율 불안] 달러→원화 환전 노린 투기세력 먹잇감…"한은 등과 공조 시급"

◆말라가는 적립금…2040년 해외자산 매각 불가피

해외자산 매각 자금 유입…'환율 절상' 압력 이어질 수도

당국 외환시장 개입 규모 커지면 '환율 조작국' 지정 우려

"한은·국민연금 간 통화스와프 등 적극적 소통 필요" 지적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오승현기자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오승현기자




미국 재무부의 올해 상반기 환율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해외 자산은 3300억 달러(2021년 기준)로 1년 전보다 600억 달러 증가했다. 국민연금은 해외투자 비중을 2025년까지 55% 이상으로 늘리기로 한 상태다. 당초 계획대로 해외투자 비중이 늘어나면 400조 원 안팎인 국민연금의 해외 자산은 최대 1000조 원까지 증가할 수 있다. 외환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해외투자를 늘리는 과정에서 매년 최소 300억 달러 이상의 환전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고령화로 기금 감소기에 진입하면 국민연금은 보험료 수입만으로 지급액을 충당할 수 없어 해외투자를 멈추고 이미 투자해 놓은 자산을 되팔아 자금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민연금 적립금은 2039년 1430조 9000억 원으로 정점을 기록한 뒤 감소하기 시작해 2050년 586조 5000억 원으로 10년 만에 약 850조 원이 줄어든다. 이후 불과 3~4년 만에 남은 적립금도 모두 고갈된다.

국민연금이 향후 급여 지급을 위해 자산을 현금화할 경우 해외 자산이 우선 매각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국민연금은 해외투자의 주요 목적에 대해 “장기적으로 기금 성숙기에 급여 지급을 위한 자산 매각분을 고려해 해외투자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라며 "향후 급여 지급을 위한 자산의 현금화 시 국내 금융시장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이때부터 기금이 완전히 고갈될 때까지 10년에서 15년 사이에 국민연금은 매년 50조~100조 원의 해외 자산을 매각할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국내 외환시장 규모가 발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연금 등 비은행 금융기관의 해외 자산 환매가 시작되면 달러 수급 불균형이 나타나게 된다는 점이다. 오지열 한양대 교수는 “해외 자산이 대거 매각되고 나면 본원소득수지가 악화되면서 우리나라 경상수지가 악화될 수 있다”며 “특히 연기금의 재정 전망이 대외적으로 공개된 만큼 이를 이용해 차익 거래를 얻으려는 해외 헤지펀드의 약탈적 매매에 노출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국민연금의 해외 자산 매각 시기가 최근과 같은 달러 수급 불안기와 맞물린다면 달러 공급이 수급 불균형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달러화 강세 흐름이 수십 년간 지속될 가능성이 낮은 데다 해외 자산을 원화로 환전하려는 수요가 장기간 환율 절상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환율 절상 압력이 커지면 외환 당국이 대처하기도 까다롭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환시장 개입 규모가 커지면 미국 재무부가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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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것은 앞으로 닥쳐올 문제가 뻔한데도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가 없다는 데 있다. 우리만큼 고령화 사회 진입 속도가 빠른 나라가 없고 이로 인한 국민연금 적립금 감소도 유례를 찾기 힘든 탓이다. 일본 공적연금펀드(GPIF)는 향후 50년 동안 보유 자산을 매각하지 않아도 보험금을 충당할 수 있을 정도로 재정 건전성이 확보된 상태다. 오 교수는 “초고령화 문제가 대두된 일본조차 국민연금처럼 재정수지가 급격히 악화되는 사례가 관찰되지 않는다”며 “향후 20~30년 동안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기조는 여러 해외 기금에서 적절한 벤치마크(기준점)를 찾기 어려운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국민연금이 한국은행·기획재정부 등 외환 당국과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김인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국민연금이 엄청난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만큼 실패했을 때 국가 전체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기관 이익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보고 정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자체 수익률 확보를 위해서 당국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오 교수는 “한은이 국민연금과 통화 스와프를 맺는 방식으로 해외 자산 매각 금액의 원화 환전을 최대한 분산하거나 국민연금이 보유한 선진국 채권 일부를 한은이 직접 매입해 외환보유액으로 활용하는 방안 등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 경우 국민연금이 해외 자산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헐값 매각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환 딜러는 “적립금 상승 속도가 둔화되기 전부터 향후 국민연금의 해외 자산 매각이 국내 외환시장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 국민연금이 한은·기재부 등과 협의체를 구성해 정책 대안을 마련하는 한편 투기적 매매를 막기 위해 환 헤지 전략을 공개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도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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