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의 역할은 세상이 아직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작가, 즉 보석이 될 원석을 발굴하는 일이다. 다양한 전시를 많이 보는 이유이며, 미술대학의 졸업 전시까지 찾아가는 까닭이 그 때문이다. 탁월한 갤러리스트는 갓 졸업하고 작가로서 본격적인 첫 발을 내딛는 그 뒤뚱거리는 걸음에서 최고의 선수를 가려낸다. 리만머핀 갤러리의 공동 창업자인 라쉘 리만이 서도호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25년 전, 예일대 졸업전시에서였다. 속이 다 비칠 정도로 얇은 천에 한 땀 한 땀 손바느질로 작업한 서도호의 작품은 그가 살고 있는 미국의 아파트, 혹은 그가 나고 자란 서울의 한옥이다. 한국이라는 확고한 문화적 배경에서 성장해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한 작가는 먹고 자는 아파트부터 모든 것이 낯설었다. 온몸으로 느낀 문화적 충돌을 한국적 수공 기법으로 구현한 작업은 섬세한 외양이 일단 눈길을 끌었고,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발길을 붙들었다. 개인의 경험이 예술의 보편적 언어가 될 때, 그 표현방식은 통역없이도 국경을 넘나든다. 좋은 예술이라는 뜻이다. 젊은 작가의 가능성을 감지한 리만머핀 갤러리는 서도호 작가를 전속으로 영입했고 그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국제적 활동이 가장 왕성한 한국 작가 중 하나인 서도호와 세계 탑10 갤러리 중 하나로 꼽히는 리만머핀갤러리가 함께 성장한 사연이다.
지난 2017년 종로구 삼청동에 소규모로 서울 전시장을 연 리만머핀 갤러리는 5년 만인 지난 3월 지금의 용산구 이태원로 소재 새 공간으로 확장, 이전했다. 메가급 화랑 중 가족이 아닌 공동 창업자가 운영하는 갤러리는 리만머핀이 유일하다. 스위스 출신의 리만 대표는 원래 컬렉터였다. 컬렉션 하다보니, 좋은 작품을 소개해 나누고 싶어 갤러리를 열었다. 1980년대 중반의 그는 유럽미술을 주로 다루면서도 당시 덜 알려진 제프 쿤스 같은 젊은 미국 작가를 소개하는 것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내고 있었다. 전시를 보기 위해 방문한 이탈리아에서 데이비드 머핀을 만난 것은 100% 우연이었다. 머핀 대표는 기업에 속한 큐레이터였다. 둘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고, 새로운 시장을 찾고자 하는 공통분모를 발견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미국 부자들의 별장이 많은 휴양도시 햄튼에 팝업스토어처럼 작은 갤러리를 열었다. 기대 이상의 큰 관심을 끌었다. 1996년 뉴욕에서 정식 개관했다. 리만머핀 갤러리는 이후 홍콩으로 진출했고, 한국까지 확장했으며, 팬데믹의 한복판에 있던 지난 2020년에 런던 분관을 열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지만, 두 대표 리만과 머핀은 순수한 업무적 동반자 관계다. 성향과 취향이 워낙 다른 탓에 그 균형점을 찾아가는 노력이 갤러리 성공의 비결로 보인다.
리만머핀이 초창기에 발굴해 지금까지 함께하는 대표작가가 서도호다. 그와의 인연으로 리만 머핀은 친한(親韓) 성향을 갖게 됐다. 서도호의 부친이기도 한 수묵추상의 거장 서세옥도 전속작가다. 서울 지점을 열기 전부터 자주 한국을 오가며 작가 탐색을 이어갔고, 2007년 이불 작가를 전속으로 영입해 지금까지 함께하는 중이다. 여성작가 테레시타 페르난데즈도 초창기 멤버다. 리만머핀 작가군을 보면 제 3세계 출신, 유색인종, 여성작가가 유독 많다.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영국 테이트모던 ‘현대커미션 2022’ 작가로 선정된 칠레 출신의 세실리아 비쿠냐, 이번 프리즈서울에서도 작품을 선보일 샹텔 조페가 대표적인 여성작가다. 니콜라스 슬로보, 빌리 장게와, 로빈 로드는 남아프리카 출신이다. 국내에서도 팬덤이 상당한 길버트 앤 조지, 헤르난 바스, 에르빈 브룸 등도 리만머핀의 작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