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연일 막대한 에너지 수입을 올리며 서방의 제재를 무력화한 듯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제재가 러시아 경제에 장기적인 타격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 속속 나오고 있다. 서방 기업 철수와 국제무역에서의 수입 급감으로 러시아인의 생활수준이 급격히 후퇴한 데다 산업 생산도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1992~1993년 러시아 경제부 장관을 지낸 안드레이 네차예프는 29일(현지 시간) 미국 CNN에 “생활수준 측면에서 러시아는 약 10년 전으로 후퇴했다”며 “러시아의 경기 침체는 지금 시작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컨설팅 업체 매크로 어드바이저리의 크리스 위퍼 분석가 역시 “서방의 제재 효과는 천천히 나타날 것”이라며 “러시아는 장기간의 침체를 걱정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지난달 예일대 경영대 연구진이 논문에서 “러시아가 경제지표를 선별적으로 공개하고 있지만 서방의 제재가 러시아 경제를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한 데 이어 많은 전문가가 ‘제재효과론’에 힘을 실은 것이다.
실제로 서방 제재의 영향으로 러시아에서는 물가 상승과 생산 급감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소비자물가는 올해 1~8월 10.7% 올랐고 생리대·외제차·화장지 같은 일부 상품은 전년 대비 가격 상승 폭이 27~41%에 달했다. 자동차 생산은 올 상반기 62%나 줄었다. 예일대 경영대 연구진은 서방 기업 1000여 곳이 러시아 사업 철수·축소를 단행해 500만 개의 일자리에 영향을 줬다고 추정하며 “블라디미르 푸틴의 자급자족에 대한 망상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국내 생산은 사업 철수, 제품 및 인재 손실을 대체할 역량이 없어 완전히 정체된 상태”라고 평가했다.
러시아 경제의 향방과 관련해 유럽이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를 시행할 12월이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가 유럽 대신 아시아·중동에 할인된 가격으로 석유를 팔면서 러시아의 올해 1~7월 석유 수출량은 하루 740만 배럴로 지난해 말보다 불과 60만 배럴 적었다. 이처럼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이 순항하며 제재 회의론도 커지던 차였다. CNN은 “12월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가 중요하다”며 “전문가들은 (유럽에 판매하던 석유를) 아시아에서 모두 사들일 정도로 수요가 충분한지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