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라 글래드스톤은 미국 뉴욕주 호프스트라(Hofstra) 대학의 미술사학 교수였다. 우리 시대의 가장 문제적 작가로 꼽히는 예술가 매튜 바니를 만나기 전까지는. 친한 친구가 운영하던 갤러리 사업을 접게 됐다며, 약속해 둔 작가를 실망시키게 돼 큰일이라고 하소연 했다. 짓궂은 친구는 “그 작가 스튜디오에 한 번 가 볼래?”라며 바바라를 끌어 당겼다. 지금은 뉴욕에서도 가장 화려한 거리 중 하나가 된 곳이지만 1980~90년대만 해도 미트패킹 스트리트는 이름 그대로 ‘도살장 거리’였다. 매튜 바니의 스튜디오는 그곳에 있었다.
바니의 작업실에 들어선 순간 글래드스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미술과 마주쳤다. 붓과 물감 대신 의학용품과 유명 야구선수의 유품들이 놓여 있었다. 작가는 의학 기계를 구성하는 재료로 작품을 만드는 중이었다. 그 주변에는 플라스틱 소재를 수술 봉합하듯 꿰맨 액자(frame)가 놓여있었다. 스포츠와 의학을 이런 식으로 미술에 끌어들이다니! 글래드스톤은 평생 지켜온 가치관이 뒤집힐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그간 배우고 가르쳐 온 미술사가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라 느껴졌고 “살아있는 예술가들을 지원하며, 이런 획기적인 작품들을 더 많은 관객들에게 더 다양하게 보여주는 게 내가 해야할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학교를 그만뒀다. 살아있는 현대미술사를 현장에서 함께 쓰기 위해 갤러리를 열었다. 뉴욕 맨해튼에 1980년 개관한 글래드스톤 갤러리다.
참고로 매튜 바니는 예일대에서 의학과 미술을 전공했고, 미식축구 선수와 의류모델의 경험을 가진 작가다. 대표작은 장편영화 연작인 ‘크리매스터’로, 외부 자극에 반응해 고환의 수축을 조절하는 크리매스터 근육에서 딴 제목처럼 작품은 인간 성(性)에 대한 암시로 가득하다. 영화와 관련된 조각·드로잉·사진을 전시로도 선보인다. 각종 비엔날레와 미술관 전시에서 호평과 혹평을 동시에 받았다. 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이 지난 2006년 개관 1주년 기념전으로 그를 초청했다. 당시 바니는 신체의 구속과 그에 대한 반응을 활용한 ‘구속의 드로잉’을 선보였다. 지난 4월 강남구 청담동에 서울 갤러리를 연 글래드스톤은 올 가을 그의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40여 년 역사의 글래드스톤은 가장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갤러리로 명성을 쌓았다. 물질과 인식연구를 미술로 풀어낸 인도계 영국작가 아니쉬 카푸어를 미국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이가 글래드스톤이다. 언어와 텍스트로 작업하는 시인 같은 미술가 제니 홀저의 첫 전시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국내에도 상당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 우고 론디노네의 제1 전속화랑 격인 ‘마더(Mother) 갤러리’가 바로 이 곳이다.
글래드스톤은 뉴욕을 넘어 벨기에 브뤼셀과 이탈리아 로마에도 분점을 두고 있다. 새 공간을 꾸릴 때도 대규모 설치작업이 가능하거나, 새로운 맥락에서 작품을 보여주는 게 가능한지를 우선 타진했다. 한국과 인연도 있다. 한국 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며 권위있는 ‘휴고보스상’ 수상작가 아니카 이의 전속화랑이다. 지난해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의 터바인홀에서 열린 아니카 이의 개인전을 물심양면 지원했고, 올해 그의 아시아 첫 개인전을 서울에서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