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 "디자인 오류가 美 스리마일섬 원전사고 불렀다"

■유저 프렌들리

클리프 쿠앙·로버트 패브리칸트 지음, 청림출판 펴냄

제어실에 경고등만 600개 훌쩍

뒤죽박죽 설계로 원인도 못찾아

과거엔 인간이 기계에 맞췄지만

지금은 혁신제품도 불편하면 실패

성공하려면 은유의 힘·공감 중요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 세상 바꿔"





지난 1979년 2월28일 새벽 4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발생했다.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 원전 2호기의 노심이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엔지니어들은 참사 이틀 동안이나 원인을 찾지 못했다. 당시 제어실에 1100개의 다이얼과 게이지, 스위치 상태 표시등과 600개가 넘는 경고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같은 제어판에 원자로 누수 경고등과 승강기 고장 경고등이 나란히 있을 정도로 디자인 체계가 뒤죽박죽이었다. 또 요즘은 정상 작동은 녹색, 오작동은 빨간색으로 경고등이 표시되지만 당시에는 색깔의 의미가 버튼마다 제각각이었다.






사고 원인은 원자로 안을 식혀주는 냉각수 비상 펌프가 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를 알려주는 게이지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있었다. 물론 한 직원이 확인했지만 다른 게이지를 보고 오는 바람에 혼란이 커졌다. 결국 엉뚱한 데서 해결책을 찾다가 노심이 완전히 녹아내리기까지 불과 30분 전에 비상 냉각 시스템을 재가동했다. “사고 당시 기계와 인간은 상대방이 이해하는 언어로 소통하지 못했다.”



최근 번역 출간된 ‘유저 프렌들리’는 ‘사용자 경험(User Friendly)’을 전면에 내세우기까지 지난 100년간 디자인의 흐름을 주도하는 법칙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펴본다. 저자는 구글 수석 디자이너인 클리프 쿠앙과 달러그 디자인 공동 창업자인 로버트 패브리칸트다. 이들은 아무리 혁신적인 상품이라도 소비자가 사용하기 불편하면 실패하기 마련인 요즘 시대에 사용자 친화적 디자인의 개념, 사랑받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방법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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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친화적이라는 말은 사용하기 쉽고 접근성이 좋으며 다루기 쉽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지 못한 디자인은 단순한 판매 부진을 넘어 끔찍한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가령 믹서기나 야채 슬라이서와 같은 주방 도구도 사용법이 복잡하면 소비자가 손을 다치기 쉽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항공모함의 레이더 화면은 귀함하는 아군 전투기의 위치를 인간이 제대로 판독하기 어렵도록 디자인됐다. 그 결과는 조종사의 행방불명이었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에서 부상한 가장 중대한 개념은 사람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려면 사람의 지각과 인지의 한계에 맞춰 기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책은 과거에는 사용자가 숙련되지 않아서 제품 관련 문제가 발생한다고 오해했고 숱한 실패를 통해 최근 들어서야 사용자 친화적 디자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애플·구글·디즈니·IBM·테슬라·아우디·포드·페이스북·인스타그램·스냅챕 등 세계적인 기업들은 소비자와 공감을 통해 기업 발전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기계와 기술이 인간의 가려운 구석을 알아서 긁어주고 사용자와 소통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가령 식빵을 토스터에 넣고 레버를 내렸을 때 ‘짤깍’ 하는 소리가 나도록 해 기계가 일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한 피드백 장치가 대표적이다. 또 디자이너들은 사용자들이 낯선 대상도 친숙하게 느끼도록 ‘은유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먼저 알아차리는 공감 능력도 중요하다. 애플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의 말대로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는 것은 소비자가 할 일이 아니다.” 2018년 컨설팅 기업 맥킨지앤드컴퍼니가 상장 기업 300개 경영진의 의사결정 10만 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고객의 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활용하는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을 활성화한 기업은 5년 간 수익이 다른 기업들보다 32% 높았다. 나아가 저자들은 사용자 친화적인 경험은 웹이나 웨어러블 기기 같은 제품 뿐만 아니라 정부나 식품 공급망, 의료 서비스 등 우리 일상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용자 친화성 디자인에도 어두운 요소는 있다. 사용하기 쉽다 보니 사용자의 능력이 후퇴하고 있고 점차 대놓고 제품을 중독성 있게 만들고 있는 추세다. 넷플릭스는 현재 영상을 마치기 전 다음 영상을 대기시키는 방식으로 끝없는 시청을 유도하고 있다. 또 페이스북은 진위 확인에 시간이 필요한 진실보다 클릭 한번 하면 되는 그럴싸한 거짓말의 유통 경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저자들은 “사용자 친화성은 사람들이 세상을 명확히 이해하도록 돕고 더 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피드백과 동기를 제공하는데 꼭 필요한 재료”라며 “앞으로 디자인의 숙제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되, 개인이 혼자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상위의 목표에 함께 도달하도록 돕는 일”이라고 말한다. 1만8000원.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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