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서울 아파트값이 한국부동산원 기준 0.15% 내리며 2013년 8월 이후 9년 1개월 만에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습니다. 수도권 전체 아파트값도 -0.21%로 지난주(-0.20%)보다 하락 폭을 확대하며 2012년 이후 10년 만에 최대 낙폭을 보였습니다. ‘증여다’, ‘특수거래다’ 등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크기는 하지만 일부 지역들에서는 고점 대비 30~40% 가까이 하락한 실거래가가 등록되고도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집값이 완연한 하향세로 돌아섰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사실 집값이라는 것이 급등해도 좋을 것이 없지만 급락해도 문제입니다. 급격히 오르면 집을 소유하지 못한 무주택자의 주거 불안이 가중되고 가계부채도 커집니다. 반면 급락하는 경우 전셋값보다 집값이 낮아지는 ‘깡통 전세’ 문제와 자산 가치 하락에 따른 소비심리 저하 등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집값이 물가 상승률 안팎의 적당한 수준으로 오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봅니다. 다만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아파트값이 쉬지 않고 올랐던 만큼 이제는 어느 정도 집값이 내려줘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집값 하락세 속 얼어붙은 거래량도 문제입니다. 집계가 완료된 지난 7월 기준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639건에 그쳤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 거래량이 4679건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13.7%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입니다. 거래가 얼어붙으면서 부동산 거래 관련 세수가 감소할 뿐 아니라 부동산 중개인, 이사업체, 가구업체 등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일감도 뚝 끊겨 경기 악화에 영향을 줍니다.
최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또한 최근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그동안 부동산 가격이 워낙 급등했기 때문에 조금 하향 안정화시키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주택시장은 갑자기 많이 올라도 문제지만 급락해도 그 자체가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경제 당국은 이제 ‘집값 폭락’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할 시기입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주요국의 금리 인상, 중국의 경기 침체까지 우리 경제가 서서히 냉각하는 상황 속 집값을 안정화시켜 거래를 보다 활성화하고 경제에 활기를 돌게 해야 할 방안을 강구해야 할 때죠.
하지만 이게 사실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경제학 격언 중 ‘샤워실의 바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샤워실에 들어간 바보가 물이 차가워서 레버를 뜨거운 쪽으로 확 돌리면 이번엔 살이 델 듯한 물이 나오죠. 그렇다고 차가운 쪽으로 확 돌리면 얼음장 같이 차가운 물이 쏟아집니다. 천천히 레버를 돌려야 원하는 온도를 맞춰야 합니다. 즉 경기과열 또는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시장개입이 과도하거나 변덕스러울 경우 발생하는 역효과를 경고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유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5년 동안 부동산이라는 샤워실 레버를 차가운 쪽으로 확 틀었습니다. 분양가 상한제, 임대차 3법, 주택담보대출 규제 등 온갖 방안을 꺼내 시장을 냉각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샤워기에서 나오는 것은 팔팔 끓는 뜨거운 물이었죠.
지금은 정책의 효과라기보다는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부채 상환 부담 증가 및 경기 악화로 인해 물이 차가워지는 형국입니다. 윤 정부는 이제 문 정부 시절 부동산 시장에 박았던 규제라는 대못들을 뽑아 레버를 따뜻한 쪽으로 돌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규제 대못을 뽑을 경우 얼마나 물이 뜨거워지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섣불리 샤워기 레버를 온수 쪽으로 돌렸다가 다시금 끓는 물이 나올까 두려운 것입니다.
추 부총리는 “일부에서는 하향 안정화하니 거래가 주춤하고 시장이 얼어붙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데 완전히 하향 안정화 추세로 고착됐는지는 조심스럽게 봐야 한다”며 “잘못된, 비정상적인 제도라도 하루아침에 바로 돌리면 시장교란이 일어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그간 위헌적인 수준의 규제로 실수요자 등 주택시장의 플레이어들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당선된 배경 중 하나는 그가 내놓은 각종 부동산 규제 철폐 공약이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사그라지는 불에 기름을 부어 다시 활활 태우는 일을 피해야겠지만 애써 찾아온 하락 모멘텀이 깨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시장을 얼어붙는 것을 그대로 두는 일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