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세계잉여금, 빚 상환 비중 50%로…예타 면제 문턱도 높인다

◆정부, 연내 재정준칙 법제화…2024년 예산안부터 적용

관리재정수지 적자 GDP 3% 내로

국가채무 60% 넘어서면 2%내로 묶어

경기침체·재난 등 위기상황땐 예외

야당 반발에 법제화 가시밭길 예고

예타 평가선 엄격한 사업설계 요구

복지사업 일부 시범 운영 후 추진

SOC 예타기준은 1000억으로 상향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내로 묶는 재정준칙을 연내 법제화한다. 세계잉여금(직전년도 회계 결산 후 남은 돈) 발생 시 국가 채무 상환에 쓰는 비율은 30%에서 50%로 올린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요건을 강화하는 동시에 사회간접자본(SOC)·연구개발(R&D) 사업의 경우 예타 대상 기준을 500억 원에서 1000억 원으로 조정해 예타 운용의 융통성을 높인다.



13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어 “재정 건전성은 우리 경제의 최후의 보루이자 안전판”이라며 재정준칙 도입 방안과 예타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먼저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 이내로 제한하되, 국가채무(D1, 중앙·지방정부 채무) 비율이 60%를 넘어서면 적자 비율을 2% 이내로 죄는 재정준칙을 연내 법제화한다.




통합재정수지가 아닌 관리재정수지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발표했던 준칙보다 엄격하다. 통합재정수지에는 사회보장성기금 수지가 포함돼 일종의 ‘재정 착시’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GDP 대비 1.5%로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4.4%)보다 양호하다. 또 시행령이 아닌 법(국가재정법)에 운용 근거를 마련하고 법이 연내 개정될 경우 2024년도 예산안부터 준칙을 즉시 적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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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칙 예외 상황은 국가재정법상 추가경정예산 편성 조건으로 제한한다. 전쟁과 대규모 재난, 경기 침체 및 대량실업·남북관계 등 중대한 변화가 해당된다. 기재부가 준칙 예외 사유가 소멸했다고 판단하면 이후 편성되는 예산안부터 준칙을 바로 재적용한다.

국가 채무를 줄이기 위해 채무 상환에 쓰이는 세계잉여금을 늘린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세계잉여금 발생 시 지방교부세를 먼저 정산하고 잔액의 30% 이상을 공적자금상환기금에 보탠다. 또 그 잔액의 30% 이상을 국가 채무 상환에 쓰는데 이 비율을 50%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가 채무를 일부 상환하고 남은 세계잉여금은 추경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는데, 채무 상환 의무 비율을 높이면 자연스레 추경 재원이 줄어들게 된다”며 “추경을 정말 필요한 경우에만 편성하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고령화·저출산으로 의무지출(복지 등 법에 따라 반드시 발생하는 지출) 비중이 내년부터 50%를 넘어서는 상황에서 이 같은 재정준칙 운용이 가능하냐는 지적도 있다. 재정정책학회장을 지낸 강병구 인하대 교수는 “정부 재량으로 조정할 수 있는 재량지출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출 구조 조정만으로 재정준칙을 준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최상대 기재부 2차관은 “연금 개혁, 건강보험 지출 효율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 등 의무지출에서도 구조 조정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법제화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2020년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확장적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문재인 정부의 재정준칙도 비판한 바 있기 때문이다. 법제화가 미뤄지면 정부도 임기 말로 갈수록 재정 확대의 유혹을 떨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예타 제도 개편의 핵심은 예타 면제를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가령 현재는 모든 문화재 복원 사업에 대한 예타가 면제되지만 앞으로는 복원 이외에 주변 정비사업이 전체 사업의 50% 이상인 경우 면제 대상에서 제외한다.

복지사업에 대한 예타 적용도 엄격해진다. 현재는 대규모 복지사업이 시범 사업 없이 바로 추진되지만 앞으로는 예타가 신청된 복지사업 중 일부는 시범 사업을 실시하고 이후 효과를 평가한 뒤 본 사업화를 추진한다.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다. 또한 한 번 시작되면 쉽게 축소할 수 없는 복지사업의 특성을 감안해 보다 엄격한 사업 설계를 요구한다. 현재 복지사업에 대한 예타 평가는 경제·사회환경분석, 사업 설계의 적정성, 비용·효과성 항목에 모두 똑같은 가중치(100점씩)를 부여하는데 앞으로는 사업 설계의 적정성 항목 가중치를 120점으로 늘리고 나머지 두 항목을 90점으로 줄인다.

다만 경제 및 재정 규모의 확대에 발맞춰 SOC와 R&D 사업의 예타 대상 기준을 500억 원에서 1000억 원으로 상향 조정한다. 또 신속 예타 절차를 도입해 시급성이 인정되는 사업의 경우 예타 대상 선정 및 조사 기간을 11개월에서 7개월로 단축한다. 추 부총리는 “(이와 같은 조치로) 예타 제도가 재정의 문지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하는 한편 예타의 신속·유연·투명성도 높이겠다”고 설명했다.


세종=곽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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