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공사(KIC)가 올해 상반기 최악의 손실(-13.83%)을 기록한 것으로 드러나 국부펀드의 운용 역량 점검이 시급해졌다. KIC는 국민의 세금을 달러 등 외화로 운용하고 있어 해외 국부펀드들과 꾸준히 비교되지만 다른 나라 국부펀드 대비 수익률이 상당히 낮아 투자 정책과 운용 전략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KIC가 부동산·인프라 등 대체투자에서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데 관련 인력들은 전문성을 쌓으면 매년 퇴사 행렬을 벌여 KIC 운용역들의 열악한 보상과 처우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KIC의 컨트롤타워인 운영위원회의 전문성 등 관리 역량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KIC의 상반기 총자산 운용 수익률은 -13.83%로 집계됐다. 이는 캐나다 연금위원회(CPPIB, -7%)나 네덜란드 공적연금(ABP, -11.90%)과 비교할 때도 적지 않게 떨어지는 수치다.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 -14.40%) 정도만 KIC가 수익률에서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KIC의 수익률 하락은 국내 다른 연기금에 비해서도 두드러진다. 국민연금이 상반기 -8%의 수익률을 기록한 가운데 △사학연금(-9.41%) △공무원연금(-4.50%) 등 대부분이 KIC보다 수익률이 낫다.
전 세계 금융시장이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고는 하지만 KIC의 수익률은 벤치마크지수와 비교할 때도 더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KIC는 지난해 총자산 수익률이 9.1%를 기록할 당시에도 주식·채권 등 전통 자산의 수익률(6.75%)은 벤치마크 대비 0.39%포인트 하회했다. KIC의 자산 운용 및 관리 역량에 허점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셈이다.
투자 전문가들은 KIC가 변동성이 낮은 대체투자 비중을 늘려나갈 필요성이 있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도 인력 관리에 실패한 것을 최대 문제로 꼽는다.
실제 출범 후 올 상반기까지 KIC의 누적 투자 수익은 총 596억 달러였으며 이 중 약 28%인 167억 달러가 대체자산에서 거둔 성과다. KIC가 대체투자 비중을 최근에야 18%까지 끌어올렸는데 수익 비중은 30% 가까울 만큼 큰 것이다. KIC가 해외 투자만 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자산 투자 가치는 더욱 큰데도 쉽사리 이를 확대하지 못하는 것은 빈번한 전문 인력 유출 때문이다.
KIC에서는 지난해 한 해 18명의 인력이 퇴사한 데 이어 올해는 8월까지 16명이 추가로 퇴직했다. 전체 인원(288명)의 12%에 달하는 수치로 KIC 직원의 절반 이상이 운용역임을 고려하면 핵심 인력 유출은 심각한 수준이다. 실제로 허재영 사모주식투자실장이 지난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으로 자리를 옮겼고 골드만삭스와 칼라일을 거친 차훈 부동산투자실장은 아부다비의 한 사모펀드 최고투자책임자(CIO)로 이직했다. 올해도 송성준 사모주식실장이 회사를 떠났고 인프라본부의 한 차장도 해외 운용사로 자리를 옮겼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체투자는 전문 인력이 중요한데 KIC에서 실력을 쌓은 운용역들이 해외로 대거 빠져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본시장에서는 KIC의 연쇄 인력 이탈에 대해 업계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연봉 등 낮은 처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한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KIC 정규직 직원의 평균 기본급은 △2020년 7211만 원 △2021년 7464만 원 △2022년 7531만 원이다. 고정 수당과 실적 수당이 따로 붙기는 하지만 국내 민간 자산운용사나 사모펀드 등의 운용역들이 억대 연봉을 쉽게 받는 것을 감안하면 KIC에 장기 근무할 매력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금융 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연봉 등 처우가 좋은 민간 금융회사가 연기금에서 경력을 쌓은 운용역을 스카우트해 가는 사례가 만연해 있다”면서 “해외 국부펀드는 국내 대비 연봉이 높고 세금도 낮아 실질 소득이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KIC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운영위원회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강화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KIC 운영위는 민간위원 6명과 당연직위원 3명으로 구성되는데 민간위원은 임기가 2년으로 짧은 데다 선임 시 정치 바람을 적잖이 타면서 전문성이 비판의 도마에 오르고는 했다.
최근 ‘킹달러’로 불릴 만큼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KIC의 수익률 하락을 부채질한 부분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KIC는 전체 자산 중 약 60%를 미국에, 나머지 30%는 유럽과 일본 등 선진국에, 10%는 신흥국 등에 분산 투자하고 있다. 유로화 및 엔화, 신흥국 통화자산은 달러화 강세로 올 들어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KIC 관계자는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로 2022년 상반기 주식과 채권 가격 하락세가 두드러졌다”면서 “미국 달러를 기반으로 하는 투자 기관 입장에서 부정적인 외환시장 환경이 지속됐던 것이 수익률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