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을 구제하기 위해 도입된 ‘새출발기금’이 출발부터 혼선을 빚고 있다. 빚의 수렁에 빠진 자영업자들에게 원금 탕감 등으로 악순환을 끊고 새출발의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지만 지원 기준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현실과는 동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연체 여부가 부실차주 선정의 주요 기준이 되면서 일부러 이자를 연체하겠다는 자영업자들의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새출발기금은 코로나19 여파로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채무 조정 프로그램으로 총 30조 원 규모로 조성됐다. 90일 이상 장기 연체에 빠진 부실차주는 60~80%의 원금을 감면해주고 근시일 내에 장기 연체에 빠질 위험이 큰 부실우려차주는 차등화된 금리 조정을 지원한다. 하지만 연체 여부가 부실차주를 선발하는 주요 기준이 되면서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벌써부터 자영업자들은 재창업 계획이 없을 경우 일부러 이자를 연체해 원금을 탕감받는 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자영업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빚이 7000만 원이면 연체한다? 안 한다?” “이자 연체하기 전에 또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나” 등의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다. 자영업자 A 씨는 “생각지도 못했던 1만 7000원이 2달 정도 연체돼 있어 한 달만 기다리면 부실차주가 될 수 있다고 상담받았다”고 말했다.
캠코 측은 “큰 틀에서 신용회복위원회의 기존 원칙을 유지하고 신용 불이익 등을 통해 도덕적 해이를 막고 있다”고 해명했다. 부실차주로 선정될 경우 2년간 신용 정보 공개, 신용카드 발급 제한 등 신용불량자 수준의 불이익을 줘 고의적인 이자 연체를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도 높은 불이익에도 연체 여부만 확인이 되면 큰 어려움 없이 부실차주에 선정되면서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어차피 폐업할 거면 일단 원금 감면을 받고 보는 게 무조건 이득”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다른 업종으로 재취업을 결심한 이들이 대거 부실차주 신청으로 몰리면서 성실하게 원리금을 갚고 폐업한 사람들은 역차별을 받게 됐다는 논란도 예상된다. 서울에서 의류 매장을 운영했던 자영업자 B 씨는 “집도 팔고 차도 팔아가면서까지 빚을 갚고 폐업한 사람은 금리 혜택만 받게 됐는데 오히려 빚을 연체한 상인들은 원금 탕감 혜택까지 받게 됐다”며 “대출 관리를 하지 못하면서까지 영업을 계속한 이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꼴”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또 다른 자영업자 C 씨는 “감면 대상이 되는 대출금에 생활비 대출금까지 포함된다고 들었는데 그 돈으로 투기를 했을지, 사치를 하는 데 썼을지는 모르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금융위원회는 기존의 신복위 채무 조정 제도와 별도로 새출발기금을 신설한 이유로 “자영업자들이 시설·설비 등 영업 기반을 유지하면서 계속적으로 사업을 영위해 신용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은 정작 영업을 계속 이어갈 상인들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지원 내용과 담당 기관이 원금 감면(부실차주)은 캠코로, 금리 조정(부실우려차주)은 신복위로만 이원화돼 있기 때문이다. 자영업자 E 씨는 “대부업체에 채무가 크게 잡혀 원금 감면 혜택을 받고 싶지만 신복위는 대부업을 취급하는 반면 정작 캠코는 대부업을 취급 안 해 필요한 지원을 못 받게 됐다”며 “도움이 필요한 대상과 지원 내용이 거꾸로 돼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D 씨는 “원금도 성실하게 갚아나갈 예정이고 대출 금리 조정안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만기 상환 연장이 절실한데 정작 일선 현장에서 필요한 지원은 쏙 빠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