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중의 주목을 받은 여러 작품들에 박훈이 있었던 건 우연히 아니다. 그는 지난 2007년 데뷔한 뒤 뮤지컬 연극 무대와 드라마 ‘태양의 후예’ ‘아무도 모른다’, 영화 ‘미드나이트’ ‘해적: 도깨비 깃발’ 등을 통해 차근차근 내공을 쌓아왔다. 그렇게 누구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자신만의 것을 만든 그는 빛을 발하고 있다.
팬데믹으로 인해 주춤했던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 영화 ‘공조2: 인터내셔날’(이하 ‘공조2’)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에서의 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공조2’에서는 빌런 장명준(진선규)의 오른팔인 북한 출신 용병 박상위를, ‘한산’에서는 용맹하고 올곧은 이운룡 장군을 연기했다. 두 역할 모두 비중이 크진 않지만 임팩트 있게 큰 스크린을 장악하기에 충분했다.
“최근에 많은 분들에게 관심받는 작품에 연달아 출연하게 되면서 흥행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과연 ‘흥행 요정’이라는 말을 저한테 써도 되는지 잘 모르겠는데, ‘흥행 깡패’ 정도는 괜찮을 것 같네요.”(웃음)
‘공조2’ 속 박훈은 강렬함을 넘어 위압감을 주는 외모다. 무자비한 빌런을 연기하기 위해 외적 변화에 힘쓴 결과다. 체중은 10kg 이상 찌웠고, 헤어스타일도 장발로 바꿨다. 얼핏 보면 그인지 못 알아볼 정도의 변화다.
“진선규 선배님이 상대적으로 슬림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밸런스를 맞춰야 할 필요가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감독님에게 제안을 했죠. 감독님도 좋아하셨어요. 사투리 선생님과 오래전부터 북한 사투리 훈련도 했고요. 계속 안 보여드린 모습을 보여 드리려고 해요. 캐릭터로 존재하고 싶고, 그런 게 많은 분들에게 어필되면 멋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유해진과의 액션신은 하이라이트였다. 박상위는 강진태(유해진)과 몸싸움을 하다가 물속에서 감전 당해 죽는다. 이 신은 촬영 2~3일 전에 갑자기 바뀐 것이었다고.
“초기에 대본에는 빌런들이 죽는 게 훨씬 더 잔인하게 묘사돼 있었어요. 근데 감독님께서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아이덴티티는 그게 아니라고 판단하셨던 것 같아요. 근데 이게 너무 고민되더라고요. 감전이 된 경험은 잘 없잖아요. 3일 밤낮을 고민하고 유튜브에서 자료도 찾아봤죠. 결과적으로 다소 웃길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공조2’가 갖고 있는 유쾌한 느낌과는 훨씬 더 맞닿아 있는 것 같더라고요.”
‘한산’은 민족적 자긍심을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뜻깊었다. 이운룡 장군은 이순신 장군이 후계자로 생각했던 인물로, 실제로 삼군 수군통제사까지 올랐다. 이런 역사적 인물을 재현하는 것이니 적은 분량이더라도 이순신 장군만큼 무게감 있게 연기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사제지간의 정을 나눌 수 있는 안성기(어영담 역) 선배님이 계셔서 저절로 연기가 됐어요. 선배님이 다 품을 수 있는 연기를 해주셔서 저 나름대로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죠.”
“개인적으로 노력했던 건 경상도 사투리 뉘앙스예요. 감독님이 이운룡이 경상도 지방의 출신 장수이니까 20% 정도만 사투리를 넣어달라고 하더라고요. 아주 기민하신 분들은 이운룡의 억양을 캐치하셨을 거예요.”(웃음)
이종석, 임윤아 주연의 MBC 드라마 ‘빅마우스’에서도 박훈은 신 스틸러가 됐다. 그는 극중 인물 모두가 집중하고 있는 논문의 주인공인 서재용 교수 역으로 등장했다. 특별출연이었지만 어마어마한 존재감으로 시청자들의 뇌리에 박혔다.
“사실 제의가 왔을 때 그렇게 중요한 역할인지 잘 모르고 출연했어요. 회상 장면에 나오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죠. 알고 보니 핵심적인 인물이더라고요. 감사했어요. 어떤 신뢰 부분이 작용하는 것 같아요. ‘저 친구라면 어느 정도 선에서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요. 그런 부분에 대해 보답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특별 출연이면 오히려 더 열심히 하기도 하고요. 특별하게 나온 이유를 만들어주고 가야 되잖아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블랙의 신부’는 박훈의 기존 이미지를 깨는 작품이었다. 그간의 악역 이미지와 상반되는 역할이었기 때문. 데뷔 후 첫 로맨스 연기이기도 했다. 첫사랑 서혜승(김희선)만을 지고지순하게 바라보는 차석진 역은 꽤 신선했다.
“감독님이 선이 굵은 남자가 여자 주인공을 계속 뒤에서 바라봐 주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다면서 찾은 인물이 저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때 전 ‘이상한 느낌이 나올 것 같다’고 했었죠. 그 역할을 위해서 우리 스태프들이 굉장히 큰 노력을 했어요. 저를 순하게 만들어야 하니까 머리 한올 한올까지 최선을 다하더라고요. 저도 어느 때보다도 스태프들한테 맡겼고요.”(웃음)
“상대 역으로 만났던 김희선 선배님은 저에게 뮤즈 같은 존재였어요. 그냥 연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죠. 나이 차이는 크게 나지 않지만 제가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동경의 대상이었거든요. 연기할 때 아주 큰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로맨스 연기는 아니지만 여성 팬들을 동원했던 작품은 또 있다. 박훈이라는 이름을 제대로 알리게 된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다. 배우 현빈의 라이벌 역할로 AR게임 내에서 15번이나 죽음을 맞이하는 역할이지만 샤프한 외모와 슈트 착장 등이 좋은 반응을 일으켰다.
“여성 팬들의 반응이 배우 입장에서 훨씬 와닿아요. 남성 팬들은 잘 얘기를 안 하시거든요. 처음으로 여성 팬의 인기를 체감했던 게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었어요. 아무래도 현빈도 있었고요.”(웃음)([인터뷰②]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