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당시 최초 신고를 받은 소방 당국이 3분 만에 경찰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지만 경찰이 교통 통제 등을 위한 대규모 인력 투입 등 대응에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인파 운집이 예상되는데도 사전 통제 방안을 수립하지 않은 데 이어 사고 발생 이후에도 상황을 안일하게 판단하는 오판의 연속이 이번 참사처럼 희생자 규모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지어 경찰은 사고 발생 직전까지 11건의 112 신고를 받고도 현장에 출동하지 않거나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신고를 받고 즉시 적극적으로 움직였으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를 사실상 묵인하고 방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소방 등 관계 당국에 따르면 이태원 압사 관련 첫 119 신고는 10월 29일 오후 10시 15분께 접수됐다. 신고 내용은 ‘이태원 와이키키 앞 골목에 사람이 무질서하게 있어 압사해 죽을 것 같다’는 내용이다. 소방 구조 인력은 신고 접수 2분 뒤인 10시 17분께 바로 출동했다. 소방종합방재센터는 이어 버튼(핫라인)을 눌러 10시 18분 서울경찰청에 공동 대응 요청을 보냈다. 사건 접수 후 3분 만이다. 공동 대응 요청에는 압사 사고가 벌어지고 있다는 최초 신고 내용이 그대로 전달됐다. 압사할 만큼 사건 현장이 복잡하니 경찰이 현장과 교통 통제를 즉각 지원해달라는 차원이다.
하지만 경찰은 소방의 압사 사고 접수 이후에도 확성기 등 통제 장비 없이 인력을 현장에 내보냈다. 현장에 도착한 소수의 경찰들이 사고 현장을 통제하기보다 맨 앞에 깔린 희생자들을 소방 당국과 구조하기에 바빴다는 것이 생존자들의 증언이다.
교통 통제도 소방의 요청 이후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구급차들이 한 시간가량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자 소방 당국은 경찰청에 11시께 교통 통제를 요청했다. 관할서인 용산서가 아닌 서울청 차원의 기동대 일부가 투입돼 현장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자정이 가까워서다.
경찰이 상황을 안일하게 인식했다는 정황은 이날 공개된 112 신고 녹취록에서도 드러났다. 사고 당일 오후 6시 30분께부터 119에 사고 발생 신고가 접수되기 직전인 10시 11분까지 경찰은 ‘압사할 것 같아 통제가 필요하다’는 신고를 열한 차례나 받고도 네 차례만 현장 출동했다. 사고 한 시간 전인 9시부터 접수된 신고에는 현장 출동도 하지 않았다. 인파 때문에 현장에 가기 어려웠다는 이유로 추정된다. 사실상 112 신고 내용을 묵살한 셈이다.
경찰도 현장 상황 오판이 인명 피해를 키웠다는 점을 시인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대국민 사과 브리핑에서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부터 현장의 심각성을 알리는 112 신고가 다수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112 신고를 처리하는 현장 대응이 미흡했다는 판단을 했다. 조치가 적절했는지 등도 감찰을 통해 빠짐 없이 조사할 것”이라고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