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남은 정기국회에서 포퓰리즘 입법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민주당이 정기국회 목표로 내세운 7대 입법 과제에는 막대한 예산 투입이 필요한 법안이 대거 포함됐다. 여당인 국민의힘과 합의에 실패하면 2020년 정기국회처럼 단독 처리도 불사한다는 게 지도부 입장이다. 당시 민주당은 압도적인 의석수를 내세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과 기업규제3법(공정경제3법) 등을 밀어붙인 바 있다. 이에 따라 경제 활력 저하와 재정 건전성 훼손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확산되고 있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7대 입법 과제를 이번 정기국회에서 모두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은 앞서 7대 입법 과제로 출산보육수당확대법·기초연금확대법·양곡관리법·노란봉투법·금리폭리방지법·장애인국가책임제법 등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전례 없는 경제위기 상황임에도 원내 1당이 경제 활성화보다는 막대한 재정 투입이 요구되는 법안만 쏟아낸 점을 우려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민주당의 아동수당법 개정안을 토대로 분석한 자료를 보면 지급 대상을 현행 ‘8세 미만 아동’에서 ‘12세 미만 아동’으로 확대하고 다자녀 가구 아동에게 추가 지급하면 연평균 3조 1553억 원의 재정이 더 필요하다. 2023년 3조 5007억 원, 2027년 2조 7649억 원 등 2023년부터 2027년까지 5년간 총 15조 7765억 원이 들 것으로 예정처는 분석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온 양곡관리법 개정안도 상황은 비슷하다. 개정안이 통과돼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면 2030년까지 연평균 1조 443억 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초연금확대법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민주당은 65세 이상 국민 중 소득 하위 70%에게 월 30만 원 지급하고 있는 기초연금을 65세 이상 국민 전원에게 지급하거나 지급액을 월 40만 원으로 늘리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어느 경우든 추가 재정 부담이 불가피하다.
노란봉투법과 금리폭리방지법 등도 대표적인 반(反)시장 포퓰리즘 법안으로 분류된다. 노란봉투법은 노조가 불법 파업을 했더라도 기업이 노조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해 불법 파업을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금리폭리방지법은 시중은행에 대출금리 산정 방식과 근거를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일종의 ‘원가공개법’이다.
7대 법안 외에도 민주당이 주요 상임위원회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법안이 대체로 경제 활력보다는 퍼주기 선심 정책에 쏠려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화물차안전 운임일몰제폐지법·청년구직수당12개월지급법·전세대출원리금감면법 등이 대표적이다. 제1야당이 경제위기 극복보다는 차기 총선을 겨냥해 특정 계층을 위한 표 계산에만 골몰해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국민의힘은 야당이 포퓰리즘 법안을 양산하고 있다며 반발하지만 169석을 보유한 민주당이 강행 처리를 시도할 경우 저지할 수단이 없다. 실제 여야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법들은 환경노동위원회·정무위원회·국토위원회·복지위원회 등에서 다룰 예정인데 해당 상임위는 민주당이 모두 위원장을 맡고 있어 일사천리로 통과가 가능하다.
민주당은 이미 2020년 정기국회에서 입법 과제로 내세운 법안들을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두 통과시킨 전력이 있다. 21대 첫 정기국회에서 당시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개혁·공정·민생·정의 4대 분야별 입법 과제 15개를 제시했다. 공수처법 개정안을 비롯해 상법 개정안이 포함된 기업규제3법 등은 사회적 후폭풍이 예상되는 만큼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속도전’을 주문하며 단독 처리했다.
청년과 중도층 등의 반발은 민주당도 고민하는 지점이다. 6개월 전까지 집권 여당이었던 세력이 미래 세대의 부담은 고려하지 않은 채 현금 살포를 남발한다는 비판이 본격적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있는 탓이다.
실제 기초연금확대법 등은 속도 조절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당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연금은 사회적 합의이자 약속인데 ‘평소에 돈을 내지 않은 사람들이 무임승차한다’면서 청년층이나 40대 화이트칼라 등이 반발할 여지가 크다”면서 “이재명 대표도 여론에서 과반의 지지를 얻는 법안부터 우선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