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방한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와의 회담 장소로 선택한 곳은 새로 이사한 한남동 관저였다. 용산 대통령실이 아닌 한남동 관저로 빈 살만을 초대하겠다는 계획은 윤 대통령의 아이디어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20일 복수의 대통령실 관계자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빈 살만 왕세자의 호의를 얼마나 얻느냐에 따라 사우디 수주 성과가 달렸다고 판단해 ‘관저 회담’을 구상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사적 공간에 초대함으로서 빈 살만 왕세자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취지다. 윤 대통령이 빈 살만 왕세자 일행의 동선까지 직접 챙기는 노력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 7일 윤 대통령이 서초동 사저에서 한남동 관저로 이사한 후 국내외를 통틀어 공식적으로 맞이한 첫 손님이 됐다.
윤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의 회담은 고위급 확대 회담(40분)→단독 환담(40분)→오찬(70분) 순으로 총 2시간 30분갸량 이어졌다. 예정보다 회담 시간이 길어지면서 오후로 예정됐던 한·네덜란드 정상회담 전 반도체 기업인 차담회 일정이 약 1시간 지연되기도 했다. 특히 윤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가 예정에 없던 단독 환담을 40분이나 할 수 있었던 건 두 사람이 관저 거실과 정원 등을 거닐며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라는 게 대통령실의 평가다.
윤 대통령은 빈 살만 왕세자와 오찬을 함께하며 빈 살만 왕세자의 동생이 F-15 전투기 조종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언급하며 자연스럽게 방산 수출 논의를 꺼내기도 했다고 한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양국 장관 간 실무 회담이 진행되는 사이 윤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는 통역만 대동한 채 정원을 산보하며 환담을 했다”고 전했다.
국가 원수의 사적 공간에 외빈을 초청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지난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을 백악관 내 ‘사적공간’인 트리티룸(Treaty Room·개인 서재로 사용)에 초청하자, 당시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파격 예우를 보였다’고 평가한 적 있다. 윤 대통령 부부는 빈 살만 왕세자에게 반려묘 공간을 소개하거나, BTS 팬으로 알려진 빈 살만 왕세자를 위해 BTS 한정판 앨범을 구비해두는 등 거리감을 좁히려 신경썼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관저 초청을 통해 빈 살만 왕세자 일행의 호의를 얻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서울을 떠나며 윤 대통령에게 “저와 대표단을 환영하고 후하게 대접해준 윤 대통령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고자 한다”며 “우리는 대화를 통해 양국의 강력한 관계를 공고히 했다”고 전했다.
양국 정부는 이번 빈 살만 왕세자 방한과 양국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총 26건의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원전, 방산 등의 계약 가능성도 높아 사우디와 맺을 투자 규모는 이보다 훨씬 커질 것이라는 게 정부 안팎의 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