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을 접한 건 민속촌에 가족들과 놀러 가서 우연히 본 게 시작인데, 국악 전공자면서도 그간 본 적이 없는 악기였어요. 비록 중국에서 전래됐지만 국악기로 소개되는데도 사람들이 전혀 관심이 없어서, 이 악기를 복원·개량하고 싶어졌습니다. 훈을 비롯해 흙으로 만든 악기에서 나오는 원초적인 ‘흙의 소리, 울림’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훈(塤)’이라는 명칭의 이름도 생소한 국악기가 있다. 흙을 구워 만든 도자기 관악기로, 사과만한 크기에 구멍이 5개 뚫려 있다. 고려 예종 때 우리나라에 들어왔지만 대금·피리·해금 등 역시 중국에서 들어온 다른 국악기들과 달리 문묘제례악에 쓰인다는 간단한 언급과 악기 모양만 전해질 뿐 연주법 등 알려진 세세한 사항이 없었다. 20여년째 국악 기반의 월드뮤직그룹 ‘공명’의 멤버로 활동 중인 송경근은 이 훈을 복원하는 것은 물론 선율을 연주할 수 있도록 개량을 시도했다. 그는 10·11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열리는 ‘태고의 소리, 흙의 울림, 훈과 율기’ 공연에서 훈을 활용해 산조, 영산회상 등 국악 10곡을 연주한다. 물을 부은 도자기 그릇을 두드려 멜로디를 연주하는 타악기 ‘율기’, 도자기로 만든 편경 ‘와경’ 같은 악기들도 복원해서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송경근은 지난 31일 서울 대학로의 문화공간 ‘예술청 아고라’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훈의 복원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유적 등에서 발견된 우리나라의 훈은 구멍이 5개인 반면 중국식 훈은 구멍이 8개일 뿐 아니라 모양도 다르다. 중국에서 온 다른 국악기들이 우리나라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훈은 모양조차 다른데도 중국 악기와 이름이 같다. 그는 “원래는 관심이 없었던 악기지만, 전통음악을 하는 입장에서 상당히 자존심이 상했다”고 전했다. 그 시기가 동북공정 등 중국의 역사왜곡 움직임이 불거졌을 때라서, 악기 이름이 같은 탓에 중국에서 악기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복원에 나서게 만든 이유였다. 그는 “공연을 준비하면서, 비슷하게 생긴 서양 악기인 오카리나처럼 학교에서 학생들이 훈을 이용해 아리랑을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기존 훈에 구멍을 하나 더 뚫어서 선율과 시김새(장식음) 등을 표현할 수 있게 개량한 ‘송훈’으로 대금처럼 산조 가락을 연주할 예정이다. 연주할 수 있는 음역은 한 옥타브 정도지만 악기를 부는 각도를 이리저리 조절해 음정을 낮추는 방식을 동원했다. 그는 쉽지 않은 공연이 될 것이라며 “이번 공연은 음정이 안 맞을 수 있고, 악기의 음량도 매우 작아서 마이크도 잘 대야 한다”고 말했다.
송경근은 요즘 국악 연주자들이 전자음악과 활발히 협업하는 것과 달리 “흙으로 만든 훈 같은 아날로그의 원초적 소리에도 더 많은 관심을 두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훈 같은 작고 거칠지만 원초적인 사운드로도 우리의 정서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앞으로 방향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