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반도체 ‘겨울’ 기조가 올해 상반기까지 혹독한 강도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메모리부터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등 반도체 산업계 전반에 걸쳐 재고 부담이 상당히 늘어난 데다 수요를 견인해줄 경제 회복 신호도 요원하다는 것이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23일 서울 신사 보코호텔에서 열린 ‘민관공동투자 반도체 고급인력양상사업 발전전략포럼’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날 포럼에는 한상진 삼성전자(005930) 상무, 이성훈 SK하이닉스(000660) 부사장,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등 업계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이 센터장은 확연히 늘어난 반도체 기업들의 재고자산 회전일수(제품이 판매되기까지 평균적으로 걸리는 시간)를 제시하며 “올해 상반기까지는 PC나 서버 쪽 재고 조정이 상당히 있을 수밖에 없다”며 “2분기까지는 D램 재고가 늘다가 하반기부터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의 재고자산 회전일수는 188일, 마이크론은 233일, 엔비디아와 퀄컴도 각각 148일, 157일에 달한다. 이들 기업이 반도체 제품을 판매하기까지 반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재고가 많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반도체 업계 내에서 감산의 중요성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봤다. 이 센터장은 “재고를 줄이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재고를 줄이기 위해선 세계 경제가 활황을 되찾아 수요가 회복되어야 하는데 이게 만만치 않은 만큼 전략적인 감산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다만 이 위기를 넘기면 중장기적으로 반도체 시장의 구조적 성장은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챗GPT를 비롯한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신규 응용처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반도체 시장의 화두로 AI 챗봇인 ‘챗GPT’가 떠오른 상황이기도 하다.
이성훈 SK하이닉스 미래기술연구원 공정기반기술 담당 부사장은 “현재 상용화된 3세대 챗GPT는 처리할 수 있는 파라미터의 수가 1750억개인데, 파라미터 수가 1조 개를 넘기는 4세대 GPT 상용화 시점에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메모리 수요가 AI용 GPU에 필수적으로 탑재되는 고대역폭 메모리(HBM)이나 데이터 연산 기능을 메모리 내부에 구현한 프로세싱인메모리(PIM) 등의 제품에 급격히 몰리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이 센터장은 ”챗GPT에 1억 명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리고 있다 보니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서버 투자 필요성이 커질 수 있다“며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아마존 등이 투자를 줄일 것처럼 얘기했는데 챗GPT에 대한 센세이션한 반응이 계속되면 하반기에 (투자계획이) 바뀔 수 있다“고 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 확대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주문 증가로 이어진다.
전반적인 산업 경쟁력 증진을 위한 업체간 협력과 고급 인력 양성 필요성도 대두됐다. 이 부사장은 “칩 제조사뿐 아니라 장비·소재 분야 협력이 없다면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며 “이에 더해 어떻게 반도체 고급 인재를 육성하고 적재적소에서 일할 수 있게 할지도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