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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산이, 래퍼 혹은 대중가수 갈림길에서 "저스트 랩 싯"

가수 산이가 서울경제스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김규빈 기자가수 산이가 서울경제스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김규빈 기자




산이에게는 양가적 이미지가 존재한다. 네임드 래퍼 혹은 대중가수. 어떤 타이틀이 더 중요하다는 것 없지만, 어디에 가치를 두냐에 따라 음악 앞에서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런 고민 속에서 산이가 내린 답은 “하고 싶은 대로”다.



정규 2집 ‘저스트 랩 싯(Just Rap Shit)’은 아무런 계획 없이 부담감 없이, 즐기면서 만들어진 앨범이다. 산이는 앨범명처럼 오로지 ‘랩’에만 집중했다. 무의식적으로 곡을 만들고 감상하기를 반복하며 자연스럽게 트랙을 쌓았다.

“그동안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곡을 냈었는데 ‘산이 씨 왜 노래 안 내냐’는 질문이 오더라고요. 난 계속 곡을 냈었는데 그럴 때마다 회의감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새벽에 감수성이 폭발할 때 스스로에게 ‘이 시점에서 네가 하고 싶은 게 뭐야’라고 물었죠. 돈이나 성적 같은 것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는 답이 나왔어요.”

“아마추어로 음악을 시작할 때 말고 이렇게 작업한 적이 없었어요. 항상 부담감이 있었거든요. 순수히 즐겁게 만들면서 ‘참 나는 랩을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원래 훅(Hook)부터 만들고 그다음에 벌스(Verse)를 넣고, 콘셉트도 미리 정해놓으면서 체계적으로 하는데 이번엔 계획이 없었거든요. 가사를 수정하는 것도 없으니까 두 달 만에 작업이 끝났어요.”

가수 산이가 서울경제스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김규빈 기자가수 산이가 서울경제스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김규빈 기자


정식으로 데뷔한 지 15년째. 비슷한 연차의 가수들에 비해 정규 앨범의 수는 적다. 2집이 나오기까지도 무려 8년이 걸렸다. 정규에 대한 욕심이 크게 없어서다. 괜히 깊은 메시지를 넣어야 할 것 같고, 아티스트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단지 좋은 노래를 만들고 싶을 뿐이었다.

“사실 이번에도 EP를 생각하고 만들었는데 하다 보니까 재밌고 잘 나오더라고요. 만들고 하다보니 곡이 많아져서 정규가 됐어요. 앨범 트랙도 곡을 만든 순서예요.”

타이틀곡은 ‘여름끝 매미’다. 당초 타이틀 후보는 앨범명과 동명의 곡 ‘저스트 랩 싯’이었다. 막상 10곡을 완성하고 들어보니 ‘여름끝 매미’가 가장 산이 다웠다. 산이다운 목소리, 산이만의 바이브가 ‘2023 버전 오리지널 산이’라고 생각됐다.

“가사 자체는 그냥 힙합 이야기예요. ‘나 잘 났고, 너보다 더 잘났어’ 이런 표현이죠. ‘여름끝 매미’는 ‘네가 아무리 울어봤자 시즌 끝나면 죽는다. 한철이다’ 이런 의미예요. 매년 여름이 끝날 때 즈음 매미들이 떨어져서 죽는 걸 보고 많은 생각을 했거든요. 매미들이 땅속에 오래 있다가 한철 울다가 떨어져 죽잖아요. 매미 울음소리도 좋아하니까 언젠가 힙합 가사에 썼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사랑 노래로 엮을 생각도 했었는데 뻔하잖아요. 이번엔 머리가 편했어요.”

가수 산이가 서울경제스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김규빈 기자가수 산이가 서울경제스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김규빈 기자



이번 앨범의 특징이 있다면 한 곡을 제외하고 모두 3분을 넘지 않는 것이다.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의 타이틀과 다르게 수록곡은 가볍다. 편하게 배경음악으로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스타일을 반영한 작업이었다.



“첫 정규에서는 모든 곡에 피처링이 있었거든요. 그땐 혼자 앨범을 채우면 지루할 거 같아서 곡마다 맞는 색깔의 사람으로 구색을 맞추면 관심을 많이 받지 않을까 했어요. 반면 이번에는 거의 다 제 목소리예요. 피처링한 친구들도 이름만 들으면 잘 모를 만한 래퍼죠. 뻔한 그림보다는 리스크가 있더라도 새로운 친구들과 해보고 싶었어요.”

산이 정규 2집 '저스트 랩 싯' 재킷 / 사진=세임사이드컴퍼니 제공산이 정규 2집 '저스트 랩 싯' 재킷 / 사진=세임사이드컴퍼니 제공


앨범 재킷도 자유로움이 묻어난다. 노을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한 남자의 뒷모습이 담겼다. 힙합 앨범의 느낌보다 서정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 재킷 속 남자는 산이의 남동생이고, 사진을 촬영한 사람이 산이라는 것도 특이하다.

“미국에 결혼식을 하러 갔다가 동생에게 ‘인생컷 찍어줄게. 가만히 있어봐’하고 찍은 사진이에요. 동생이 재킷으로 사용한 걸 알고 돈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은혜도 모르고.”(웃음)

“앨범 재킷 작업을 안 해 본 건 아니에요. 요청해서 받아봤었는데 썩 마음에 드는 게 없었어요. ‘저스트 랩 싯’이라는 강렬한 단어 때문인지 강하고 센 느낌이더라고요. 이번 앨범은 ‘그냥 랩’ 이런 뜻이거든요. 칼을 갈아서 내가 대한민국 최고 래퍼라는 걸 보여주겠다는 게 아니에요.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니까 랩도 심플하게, 복잡한 구조를 띄지 않았으면 했어요.”

가수 산이가 서울경제스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김규빈 기자가수 산이가 서울경제스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김규빈 기자


공전의 히트곡 ‘한여름밤의 꿀’로 산이를 접한 이들이라면 ‘저스트 랩 싯’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대중성과 힙합 사이 두 가지 모드를 가진 그의 성향이 빚은 결과다.

"예전에 ‘넌 뭐 하는 사람이냐. 뭘 하고 싶은 거냐. 한 가지만 하지’ 이랬어요. 그런 것에 신경을 많이 썼고요. 대중적인 노래를 낸 뒤에는 ‘내 시작은 언더그라운드니까’라는 생각으로 강한 노래를 했었죠. 그런데 이제 와서는 큰 의미가 없더라고요. 듣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듣는 거예요.”

경험과 연륜이 만든 여유다. 힙합이 아니면 음악이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할 때도 있었지만, 음악의 분야가 꽤 넓다는 것을 깨달았다. 랩으로 얻는 쾌감과 대중적인 노래로 몇만 명과 함께 떼창을 할 때 쾌감은 비교할 수 없이 다른 행복이다. 누군가가 어떤 음악을 폄하하고 그것에 상처받을 필요도 없다는 생각까지 다다랐다.

“악플이라도 좋아요. 제 노래를 들어준 거니까요. 요즘은 들어보지도 않고 곡이 올라오자마자 30초도 안 돼서 댓글을 남기는 사람들도 있긴 하던데. 그래도 사실 감사해요. 그분들 없으면 제가 음악을 못해요. 많은 아티스트들이 가사가 안 나올 때 악플을 보면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요. 사실상 공생관계인 거죠.”(웃음)

가수 산이가 서울경제스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김규빈 기자가수 산이가 서울경제스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김규빈 기자


이번 앨범으로 어떤 평가를 받거나 성적을 거뒀으면 하는 바람도 없다. 랩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든 앨범이기에 단지 리스너들이 편안하게 즐겼으면 한다.

“‘얼마나 잘했는지 한번 볼까’ 이런 자세로 들으면 재미없을 거예요. 그냥 틀어놓고 설거지하고 빨래하면서 들으면 신나는 곡들이에요. 목표가 있다면 산이가 2023년도에 ‘저스트 랩 싯’이라는 앨범을 냈고, 이게 2023년도의 산이라는 걸 인정받는 거예요. 예전의 산이가 좋다는 분들도 있고, 바뀌었는데 신선하다고 하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제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인정이니까요. 들어봐준 것만으로도 땡큐!”(웃음)


추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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