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43)씨는 수년 전 친하게 지내던 B(47)씨 등 이웃들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초등학교 저학년 딸이 B씨 자동차에서 한참을 나오지 않았기때문이다. 딸이 B씨를 잘 따르기는 했으나 그동안 석연찮은 구석도 한둘이 아니었다. A씨는 “삼촌이랑 뭐하고 놀았어”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딸에게 물었고,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처음 머뭇거리며 쉽게 답을 하지 못하던 아이의 입에서 한참 뒤에야 “삼촌이 사랑을 하자고 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A씨는 B씨를 고소했고, 검찰은 수사 과정을 거쳐 B씨를 13세 미만 아동 추행(미성년자 의제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B씨가 본인 성기를 아이의 신체에 접촉하는 등 추행 행위가 있었다는 게 검찰 판단이었으나 과정은 쉽지 않았다. 검찰이 아이 속옷에서 B씨의 침 성분이 검출됐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감정 결과까지 제출했지만, 법원은 아이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양성반응이 약한데다, 정액 반응이 없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아이는 최초 경찰 조서 당시에도 자신의 바지 속에 손을 넣는 등 속옷을 만지는 습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건 당시 B 씨가 아이들에게 풍선을 불어줬을 때 혹은 손등에 긁힌 상처 부위를 핥았을 때 묻은 침이 다른 경로로 피해자의 속옷에 묻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결국 A 씨는 거짓말쟁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 써야 했다.
꼬인 실타래를 푼 건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 디엔에이(DNA) 감정실이었다. 감정실은 우선 법광원를 이용한 1차 감정에 나섰다. 이어 속옷 27개 부위와 바지 19개 부위 등 46개 부위를 샘플링했다. 검찰은 특히 포괄적인 검사가 가능한 ABA카드를 선택했다. ABA카드는 남성의 사정 뿐 아니라 성기를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도 양성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정실은 열흘간 집중 감정한 끝에 결국 7개 부위에서 B씨 정액과 타액을 발견했다. 또 1개 부위에서 타액을 확인했다. 이는 아이의 진술을 뒷받침할 객관적 증거였다. 여기에 감정을 맡았던 연구관이 증인으로 나서 과학적 분석을 더하면서 재판 분위기가 바뀌었다. 결국 B씨는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반면 B씨는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양형이 부당하다며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당시 감정을 맡은 이한철 대검 과학수사부 보건연구관은 “(대검 감정실은) 2차 검증의 역할을 주로 하긴 하지만 언제나 처음 조사한다는 생각으로 감정에 나선다”며 “무엇보다 우리의 손을 떠나면 더 이상 피해자들은 기댈 곳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