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민(39·남)씨는 직장 근처 헬스장에 등록한 날부터 퇴근 후 퍼스널트레이닝(PT) 수업까지 받으며 몸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근력운동을 할 때면 오른쪽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사무직 12년차인 서씨는 현대인들의 고질병인 거북목과 손목터널증후군을 달고 산지 오래다. 간혹 목·어깨가 결리고 뒷골이 땡기는 증상이 있었지만 잠시 휴식을 취하고 주변 근육을 주무르면 증상이 사라져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기는 커녕 감각이 무뎌지고 손발저림이 심해졌고, 키보드를 치는 것조차 불편한 지경에 이르렀다. 유독 두통이 심하던 어느 날 한쪽 눈이 보이질 않자 덜컥 겁이 난 서씨는 병원에서 '일과성 뇌허혈 발작'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들었다. 그간 겪었던 신체 변화들이 단순히 근골격계 질환 탓이 아니라 목과 머리의 주요 혈관들이 좁아지면서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아직 40대도 안됐는데, 뇌혈관이 좁아졌다고요?" 생각지 못한 진단에 망연자실한 서씨에게 주치의는 "증상이 더 악화되기 전에 병원을 찾아 천만다행"이라며 "정밀 검사를 통해 뇌혈관이 좁아진 부위와 정도를 파악한 다음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 ‘미니 뇌졸중’이라 불리는 일과성 뇌허혈 발작…3040도 방심은 금물
다소 생소한 병명의 일과성 뇌허혈 발작(TIA·Transient Ischemic Attack)은 뇌의 혈액공급이 일시적으로 차단되면서 국소성 신경학적 결손이 갑자기 발생한 상태다. 뇌혈관이 완전히 막히기 전에 잠시 막혔다 풀리면서 나타난다. 뇌졸중은 크게 뇌경색과 뇌출혈로 나뉜다. 뇌혈관이 갑자기 혈전 등으로 막혀서 발생하는 질환이 뇌경색, 뇌혈관이 갑자기 터져서 발생하는 질환이 뇌출혈이다. TIA는 기본적으로 뇌졸중에 포함되지만 뇌혈관이 완전히 막혀버린 뇌경색과 달리, 24시간 내에 완전히 가역적으로 회복된다. 뇌경색의 전조증상이란 뜻에서 TIA를 '미니 뇌졸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뇌경색 환자 4명 중 1명이 뇌졸중 발생 전 일과성 뇌허혈 발작을 경험한다는 보고도 있다.
문제는 일과성 뇌허혈 발작을 경험한 많은 환자들이 질환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한다는 점이다. 증상이 완전히 회복되는 특성 탓에 뇌졸중이 저절로 치료되었다고 여겨 적절한 진료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기 쉬운 30~40대에는 일과성 뇌허혈 발작을 겪고도 증상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겨 병을 키우기 쉽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1년 한해 동안 12만 3265명이 일과성 대뇌 허혈 발작 또는 관련 증후군으로 병원을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 비율을 살펴보면 60대가 3만 8436명으로 가장 많은 31.2%를 차지했는데, 40대(7258명·5.8%)와 30대(2783·2.3%) 환자도 결코 적지 않다. 드물지만 20대에 TIA를 경험한 환자도 있다.
◇ 증상 사라졌는데 뇌손상 남아있기도…3개월 이내 뇌경색 발생률 최대 18%
실제 뇌졸중 증상이 사라진 환자들을 대상으로 자기공명영상(MRI) 등 영상검사를 해보면 뇌손상이 동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TIA 발생 직후는 뇌경색이 발생할 위험이 매우 높아 주의가 필요한 시기다. 문헌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TIA를 겪었던 환자의 약 5%가 이틀 이내에, 11%가 일주일 이내에 뇌경색을 경험한다. 2005년 영국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뇌경색으로 입원한 환자 2416명 중 549명(23%)이 뇌졸중이 발생하기 전에 증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뇌졸중이 발생한 당일에는 17%가, 그 전날에는 9%가, 일주일 이내에는 43%의 환자에서 TIA 증상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TIA가 나타났을 때부터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임상에서는 일과성 허혈 발작 후 뇌졸중의 초기 위험을 예측하는 지표로 ABCD2 점수를 사용한다. ABCD2 지표는 △60세 이상의 나이 △고혈압(수축기 혈압 140 mmHg 또는 이완기 혈압 90mmHg) △편측마비·언어장애 등의 임상 증상 △증상 지속시간 △당뇨병 등 뇌졸중 위험인자로 구성된다. 개별 항목들을 점수화시켜 뇌졸중 발생 또는 재발 위험도를 계산하는 것이다. ABCD2 합산 점수를 기준으로 △저위험군(0~3점) △중등도 위험군(4~5점) △고위험군(6~7점)으로 나뉘는데, 위험도에 따라 뇌졸중 발생 확률이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60세 미만이라도 당뇨·고혈압이 있고 편측마비·언어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났으며 증상 지속시간이 길어지는 추세라면 고위험군에 해당한다. 이 경우 일주일 이내에 뇌졸중이 올 확률이 11.7%나 된다. 점수와 무관하게 나이가 60세를 훌쩍 넘었거나 경동맥 협착·심방세동 등의 질환을 동반했다면 뇌졸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김태정 대한뇌졸중학회 홍보이사(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일과성 허혈 발작은 적절하게 진단받고 치료하지 않을 경우 3개월 이내에 뇌졸중이 발생하는 경우가 최대 18%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며 "뇌경색 발생의 경고 표시이므로 증상이 호전됐더라도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