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은 축구 한일전 역사에서 한국의 암흑기였다. 16세 이하(U-16) 대표팀이 6월 인터내셔널 드림컵에서 일본에 0 대 3으로 완패했고 같은 달 U-23 대표팀은 아시안컵 8강에서 일본을 만나 역시 0 대 3으로 무기력하게 졌다. 한 달여 뒤에는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성인 대표팀이 동아시안컵에서 후반에만 3골을 내주고 일본에 0 대 3으로 패했다. 각급 대표팀의 잇따른 0 대 3 한일전 완패는 한국 축구에 큰 쇼크였고 그 시작이 U-16 대표팀이었다.
이제는 U-17 선수가 된 그때의 그 아이들이 1년 만의 설욕전에 나선다. 7월 2일 오후 9시(이하 한국 시각) 태국 빠툼타니 스타디움에서 일본과 아시아 패권을 다툰다. 변성환 감독이 이끄는 U-17 대표팀은 30일 같은 장소에서 끝난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U-17 아시안컵 4강전에서 우즈베키스탄을 1 대 0으로 꺾었다. 앞서 이란을 3 대 0으로 누른 일본과 ‘결승 한일전’이 성사됐다. 한국과 일본이 U-17 아시안컵 결승에서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명준(포항제철고)을 원톱에, 양민혁(강릉제일고)과 윤도영(충남기계공고)을 좌우 날개에 세우는 등 4 대 1 대승을 거뒀던 8강 태국전과 같은 라인업으로 나선 대표팀은 전반 31분 미드필더 백인우(용인시축구센터)의 한 방으로 신승했다. 역습 상황에서 드리블 돌파를 하던 진태호(영생고)가 상대 태클에 걸려 넘어졌고 이 과정에서 상대 수비의 팔에 공이 걸렸다. 핸드볼 파울로 페널티 박스 밖 정면에서 프리킥의 기회가 주어졌다. 키커로 나선 백인우의 오른발을 떠난 공은 원바운드로 절묘하게 오른쪽 골망에 꽂혔다.
이 대회에서 1986년·2002년에 우승한 한국은 21년 만의 정상 탈환을 노린다. 디펜딩 챔피언 일본에는 직전 2018년 대회에 이은 두 대회 연속 우승의 기회다. 격년으로 열려온 이 대회는 코로나19로 2020년 대회는 개최하지 못했다. 한국이 결승에서 일본을 이기면 일본의 대회 네 번째 우승을 막으면서 최다 우승 기록(3회)을 공유하게 된다.
이번 한일전은 창과 창의 대결이라 할 만하다. 한국은 5경기에서 4승 1패를 거두는 동안 15골을 넣고 4실점했다. 유일한 패배는 로테이션을 가동해 힘을 빼고 치른 조별리그 이란전(0 대 2)다. 일본도 화력 쇼를 벌였다. 4승 1무를 달리는 동안 19골을 폭발했다. 다만 6골을 내줘 실점이 우리보다 많다. 현재 김명준과 윤도영, 일본의 모치즈키 고헤이가 나란히 4골씩으로 득점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어 결승전은 득점왕을 가리는 마지막 한 판이기도 하다.
일본은 한국을 잡은 이란을 상대로 4강에서 3골을 넣었는데 후반 세 번째 골 장면에서는 ‘가위바위보’로 프리킥 키커를 정해 눈길을 끌었다. 사토 류노스케가 나와타 가쿠와 가위바위보에서 이겨 프리킥을 했고 수비 벽 아래로 깔려간 공이 골망을 갈랐다.
변 감독은 “우즈베키스탄은 이번 대회 지역 예선에서 우리가 역전패한 팀이다. 당시 느낀 감정을 일기장에 적었고 동기부여 차원에서 그 내용을 4강전을 앞둔 팀 미팅 시간에 보여줬다”며 “우즈베키스탄을 준결승에서 만나고 일본을 결승에서 상대하는 스토리를 상상했는데 현실이 됐다. 한국과 일본 모두 전력이 노출됐으니 누가 더 회복을 잘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