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크골프 채를 지팡이 삼아 천천히 걸어간다. 두 손을 쓰기 어려운 이는 한 손으로 스윙을 날린다. 한 번, 두 번, 세 번. 채가 허공을 헛질할 때도 있다. 하지만 얼마나 멋있게 치는지, 규칙은 잘 지켜지고 있는지, 누구의 타수가 적은지 등 멋진 자세와 우열을 가리는 것은 이 자리에서 중요하지 않다.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두 발로 초록 잔디밭을 밟는 것, 조바심 내지 않고 운동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매주 목요일 오후 3시마다 펼쳐지는 구로안양천파크골프장의 풍경이다. 매주 이 시간은 구로파크골프장애인동아리와 구로장애인부모연합회의 회원들이 파크골프를 치는 날이다.
지난 27일 서울 구로 고척동에 위치한 구로안양천파크골프장을 찾았다. 철문 앞에 전동 휠체어 3대가 주차돼 있었다. 구로구시설관리공단은 지난해 4월부터 ‘우리 모두 함께 파크골프 배워요’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누구나 파크골프를 즐길 수 있도록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허문 ‘배리어 프리(Barrier free·장애물이 없는) 운동의 일환이다. 매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18홀 중 9홀을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비워둔다. 매주 목요일마다 40여 명씩 참가해 지금까지 대략 2000여 명의 장애인이 파크골프를 즐겼다. 4월과 10월에는 파크골프 지도사를 섭외하고, 공단 직원들도 파크골프장에 나와 함께 파크골프를 치는 행사를 개최한다.
파킨슨병을 가지고 있는 A씨는 파크골프를 치면서 건강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파크골프만큼 재활에 좋은 운동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걸으라고 하면 힘들어서 못 걷는데 서로 대화도 하고, 공을 목표로 두고 걸으니 시간이 잘 가요.”
파크골프는 신체 재활뿐만 아니라 관계를 쌓고, 자신감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날 파크골프를 치러 온 70대의 변 씨는 “누가 소외하지 않는데도, 항상 소외감이 들었죠. 그런데 파크골프를 치고 나서는 그런 감정이 사라졌어요”라고 말했다. 70대의 엄 씨는 일주일 중 목요일 하루가 스트레스를 날리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채가 공을 탁하고 칠 때 나는 그 ‘짱’하는 소리에 쾌감을 느껴요. 기분이 정말 좋아요.”
이들이 원하는 것은 파크골프를 조금이라도 더 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2시간만 할당된다. 그마저도 목요일에 비가 내리면 파크골프장이 폐장하고, 날씨가 너무 더운 날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엄 씨는 “오전 등 다양한 시간대가 있으면 좋겠어요. 여름 오후는 너무 더워요.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정말 충분해요”라고 덧붙였다.
오후 4시는 발달장애인이 복지 선생님의 지휘 아래 파크골프를 치는 시간이다. “한 명씩 채 가져가세요” 선생님의 구령 아래 아이들이 한 명씩 채를 가져가 티잉 구역 앞에서 차례를 기다린다. 친구들이 파크골프 채를 휘두를 때마다 웃음소리가 나오다 본인 차례가 되면 눈빛이 사뭇 진지해진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학부모 B씨는 “처음에는 헛스윙도 하고 잘 못했는데 이제는 곧잘 하는 것 같아요. 아이가 파크골프 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빠지면 큰일 나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구로안양천파크골프장은 장애인용 파크골프장은 아니다. 장애인용 골프장은 언덕이 없고, 평탄해야 하지만 일반인과 함께 사용하는 구장이라 난이도 조절을 위해 코스를 따라 얕은 굴곡이 있다. 공인구장이기에 함부로 코스나 설계를 바꿀 수도 없다. 다만 공단은 장애인도 홀에 빠진 볼을 쉽게 꺼낼 수 있도록 깃대에 갈고리를 설치했다. 공단 관계자는 “장애인용 파크골프장은 아니지만 장애인분들도 시설을 편히 이용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보조해 드리려고 한다. 깃발에 설치된 갈고리도 그 일환”이라고 밝혔다.
파크골프가 만들어진 취지가 ‘많은 사람이 좀 더 쉽게 골프를 치는 것’이다. 배리어프리 스포츠인만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파크골프 하나로 함께 어우러지고 서로 응원하는 것을 구로안양천파크골프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모두 파크골프 배워요’를 시행한 지 이제 2년 차가 됐는데, 18홀 중 9홀을 단독으로 지정해 주다 보니 처음에는 반발도 있었어요. 하지만 비장애인분들이 지나가다가 자세를 잡아주기도 하는 등 이제는 서로 응원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