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 직원들이 상장사의 무상증자 정보를 미리 확보해 127억 원에 달하는 부당 이득을 취득했다가 금융 당국에 대거 적발됐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은행 내부통제 부실 문제와도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KB금융(105560)지주 차기 회장 인선 작업에도 영향을 끼칠 지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에 대해 “회장 선임 절차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12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감원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의 해당 부서 직원 상당수는 2021년 1월부터 올 해 4월까지 61개 상장 법인의 무상증자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이용해 자신들이 직접 주식을 거래했다. 이들은 본인과 가족 명의로 정보 공개 전 대상 종목 주식을 매수하고 무상증자 공시로 주가가 상승하면 주식을 매도해 차익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총 66억 원의 이득을 취득했다. 또 해당 정보를 다른 부서 직원과 가족, 친지, 지인(회계사·세무사 포함) 등에게도 공유해 총 61억 원가량의 차익을 얻게 하기도 했다.
무상증자는 기업이 자본금을 늘리면서 새 주식을 주주들에게 공짜로 나눠주는 행위다. 주식 공급이 증가하면서 주가가 일시적으로 떨어지는 ‘권리락’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주주 친화적 정책으로 인식돼 주가에 단기 호재로 작용한다. 금융 당국은 긴급조치(패스트트랙)를 거쳐 KB국민은행 증권 대행 업무 부서 소속 직원들을 자본시장법상 미공개 중요 정보 이용 금지 위반 혐의로 검찰에 통보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올 초 무상증자 테마 급등주를 조사하면서 이번 KB국민은행 직원들의 불공정거래 혐의를 포착했다. 당국은 곧장 현장 조사와 디지털기기 포렌식을 실시해 증거 자료를 확보하고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현장 검사를 실시해 KB국민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적절히 작동했는지 여부를 살폈다. 이어 검사 결과 고객사 미공개 정보 취득 최소화, 직원 간 불필요한 정보 전파 최소화, 미공개 정보 이용 행위 사전·사후 통제 등 증권 대행 부서에 관한 관리 의무 이행에 미흡한 점이 있다고 보고 KB국민은행의 법규 위반 사항에 대한 책임 소재를 가리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당국이 검찰로 넘긴 KB국민은행 직원들이 기소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당국에 따르면 증권 대행·여신 등 계약 관계를 통해 주권 상장 법인의 내부 정보가 집중되는 금융 회사의 임직원은 자본시장법상 준(準)내부자로 분류된다. 직무상 취득한 미공개 정보를 주식 거래에 이용하거나 다른 사람이 이용하게 한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특히 KB국민은행이 내부통제 소홀 등의 문제로 관련 업무 인가를 반납하게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국내에서 무상증자 대행 업무를 맡고 있는 곳은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 한국예탁결제원 등 3곳뿐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증권 업무를 대행하는 은행 직원들이 일반 투자자들은 알 수 없는 내부 정보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한 사례이자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중대 사안”이라며 “금융회사 임직원이 연루된 사익 추구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 대응할 계획이고 KB국민은행에도 내부통제 부실 등 관련 책임을 엄중히 물을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나아가 이번 사건이 KB금융지주 차기 회장 경쟁 구도에 불똥을 튀길지 여부에도 주목했다. 후보 간 경쟁력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는 작은 소란도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앞서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지난 8일 회의를 열고 박정림 KB증권 대표(KB금융 총괄부문장 겸직)와 양종희·이동철·허인 KB금융지주 부회장(가나다 순) 등 총 6명을 차기 회장 1차 숏리스트(압축된 후보 명단)로 선정했다. 외부 후보 2명은 익명 요청에 따라 공개하지 않았다.
박 대표는 내부 후보자 4명 가운데 유일한 여성으로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KB금융에서는 자본시장, 기업투자금융(CIB), 자산운용(AM) 부문을 담당한다. 1961년생 동갑내기 부회장 3명보다 2살 어리지만 강력한 다크호스로 꼽힌다.
양 부회장은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해 2016~2020년 5년간 KB손해보험 대표로 재직했다. 2019년부터 KB금융지주 보험부문장을 맡은 뒤 2021년 초 부회장에 선임됐다. 그는 개인고객, 자산관리(WM)·연금, 중소상공인(SME) 부문장을 맡고 있다.
이 부회장은 고려대 법학과를 나와 2017년 KB금융지주 전략총괄 부사장, 2018~2021년 KB국민카드 대표를 역임했다. KB국민카드 대표 때는 KB금융지주에서 개인고객부문장을 맡았고 지난해 초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그룹에서 디지털, 정보기술(IT) 부문을 맡고 있다.
서울대 법학과 출신인 허 부회장은 2016년 KB국민은행 영업그룹 부행장, 2017~2021년 은행장을 지냈다. 지난해 초 부회장 자리에 올라 글로벌, 보험 부문을 맡고 있다.
회추위는 이달 29일 6명을 대상으로 1차 인터뷰를 진행한 뒤 후보군을 3명으로 압축할 예정이다. 이후 다음 달 8일 3명의 후보자를 대상으로 2차 심층 인터뷰를 가진 뒤 최종 후보자를 확정한다.
한편 이 원장은 지난 10일 인천 서구 하나금융글로벌센터에서 개최된 ‘중소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KB국민은행 임직원 사건을 두고 “무상증자와 관련된 주식시장의 자금 흐름과 주가 변동 추이를 보면서 일부 내부 정보를 이용한 세력이 있을 수 있다고 봤다”면서도 “최고위층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에 대해선 조금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 원장은 “자본시장 등 주된 업무가 아닌 상황에서 직접적인 책임을 지주단과 은행장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는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한다”며 “최고위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법규를 넘어서 포퓰리즘적으로 과도하게 제재하는 것은 법률가로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절차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며 “궁극적으로 선임 절차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