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부족과 거리가 멀어 보이던 유럽에서도 ‘물 확보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유럽은 강우량이 비교적 풍부해 상하수도 인프라 투자에 소홀했지만 최근 가뭄이 심각해지면서 다습 지역에서도 물이 부족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은 물론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도 막대한 양의 물이 필요해 각국이 뒤늦게 대책을 내놓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7일(현지 시간) “유럽에서 물 부족으로부터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는 그자비에 르플래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환경국 수자원팀장의 발언을 전하며 유럽의 물 부족 상황을 보도했다. 세계자원연구소(WRI)의 이달 발표에 따르면 벨기에는 토양이 습한데도 불구하고 2019년에 전체 물 공급량의 80%를 사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FT는 “올여름 남유럽 전역의 가뭄과 산불은 물 부족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명백한 신호”라며 “(나아가) 폴란드·독일처럼 습한 나라들도 물 부족 상황에 처했다”고 전했다.
물 부족의 원인으로는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에 더해 유럽의 후진적인 수(水)처리 시스템 및 제도가 꼽힌다. 유럽 수자원 업체 협회인 유르오(EurEau)의 집계에 따르면 EU 식수의 25% 정도가 수도관 누출로 손실된다. 독일을 제외한 유럽연합(EU) 국가들이 EU의 식수 및 폐수 기준을 맞추려면 물 관련 지출을 현재보다 25% 이상 늘려야 할 정도다. 마르크 비어켄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수문학 전공 교수는 “(유럽에서) 물 보존을 장려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물 부족은 농업, 일상 생활은 물론 여러 첨단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 제조 시설은 칩 세척, 데이터센터는 시설의 온도·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다. 일례로 벨기에에 위치한 구글 데이터센터는 지난해 2억 7060만 갤런의 물을 사용했는데 이는 올림픽 규격의 수영장 408개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원자력발전소 냉각, 수소전기 분해, 탄소 포집 등 청정에너지 발전을 위해 필요한 물의 양은 2050년께 연간 580억 ㎥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FT는 “이는 유럽 식수 소비량의 두 배”라며 “화석발전에서 벗어나려는 유럽의 전략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유럽 각국과 기업들은 뒤늦게 물 보존 대책을 마련하고 나섰다. 3월에 프랑스는 2030년까지 모든 분야에서 물 소비를 10% 경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절약 계획을 발표했으며 EU는 6월 각국에 가뭄 관리 계획을 수립할 것을 요구했다. 영국의 상하수도 조합 ‘워터UK’는 5월 미처리 하수를 줄이기 위해 100억 파운드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