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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을까…홍사빈·송중기가 벗어날 수 없는 지옥도 그려낸 '화란' [오영이]

영화 '화란' 리뷰

방황하는 소년과 어른의 이야기

찐득거리는 감정들의 향연

사회의 사각지대를 그린 지옥도


오늘 영화는 이거! ‘오영이’




영화 '화란' 스틸 /사진=(주)사나이픽처스영화 '화란' 스틸 /사진=(주)사나이픽처스




찐득거리는,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온몸에 덕지덕지 들러붙는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이후에야 잠시 숨을 가다듬을 수 있다. 올해 들어 제대로 된 누아르를 볼 수 없었던 관객들에게 희소식처럼 다가오는 영화 '화란'(감독 김창훈)의 이야기다.

영화 '화란'은 알콜중독자인 새아빠와 자신을 보호해 주지 못하는 엄마, 그리고 갑자기 생긴 이복 남매 하얀(김형서)과 함께 살며 서투르게 성장하는 소년 연규(홍사빈)의 이야기를 토대로 서사를 쌓아 올린다.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연규는 방황하던 중 자신이 가장 힘들 때 가장 원하는 것을 아무 대가 없이 제공한 치건(송중기)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 '화란' 스틸 /사진=(주)사나이픽처스영화 '화란' 스틸 /사진=(주)사나이픽처스


치건은 조직의 중간 보스로 불법적인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간다.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자신처럼 절대 벗어날 수 없는 동네에서 태어나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연규를 발견한 그는 그에게 호의를 건넨다. 크지 않은 돈, 하지만 그 돈은 어른을 믿지 않았던 연규에게 처음으로 받은 관심과 사랑이 되어 각인된다.

연규는 치건에게 다가가 일을 배우려고 한다. 처음엔 거절하지만 모종의 사건을 겪은 연규를 알게 된 후 묘한 연대를 느낀 치건은 여러 가지 불법적인 일을 맡기며 가족처럼 그를 여기게 된다. 하지만 행복이 느껴지는 것도 잠시, 불법적인 일에 항상 회의감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한 연규는 끝내 사고를 치고야 만다. 결국 그의 앞에 놓인 것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미래일 뿐이다.

영화 '화란' 스틸 /사진=(주)사나이픽처스영화 '화란' 스틸 /사진=(주)사나이픽처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작품 내내 연규는 도망치기 바쁘다.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새아버지와 맞서지 않고 자신을 걱정하는 이복남매 하얀의 마음을 모른 척 한다. 합법적인 일로는 절대 자신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불법적인 일에 가담하는 것으로 자신이 잘 하고 있다고 잠시나마 합리화한다.





하지만 이를 모두 연규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연규의 어린 시절에는 그를 지지하고 믿어주는 진실한 어른들이 없었다. 그러기에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연규가 낙원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화란'은 어른들에게 버려진 소년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그리며 씁쓸하고 찐득거리는 감정을 남기는 작품이다. 그 과정을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우리는 연규 같은 소년에게 어떤 어른이 되어줄 수 있는가'에 대해 되묻게 만든다.


정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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