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 근절은 건전한 노동시장을 만들어가는 노동개혁 출발이고 노사법치 확립의 핵심입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악성적인 임금체불 사건에 대해 사업주 구속 수사가 원칙이라며 엄정하게 대응하기로 했다. 임금체불 근절에 대해서는 노사뿐만 아니라 국민적 공감대가 높다. 정부가 앞으로 임금체불 난제에서 확실한 성과를 거둔다면, 노동계로부터 비판을 받아온 노동 개혁도 동력이 살아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장관은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 장관과 “임금체불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책임을 묻겠다”며 “재산을 은닉하거나 사적으로 유영하는 악의적인 상습적인 체불사업주는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두 부처 장관이 임금체불 근절을 위해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고용부의 임금체불 사건 처리는 체불사업주 처벌 보다 피해 근로자의 구제가 우선이었다. 사업주 인신구속이란 강도 높은 수사는 후순위였다. 이 장관과 한 장관이 이런 수사 관행을 멈추겠다고 공언한 이유는 임금체불 문제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다. 연간 임금체불금은 최근 10년간 1조원을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올해도 8월 말까지 체불임금 규모는 1조141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9.7%나 증가했다. 임금 체불은 해당 근로자의 가족 생계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임금 체불은 기업 경영난과 직결돼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칼을 뺀 ‘악성 임금체불’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악덕 사업주에 대한 약한 처벌이 꼽혔다. 직장갑질 119 소속 박성우 노무사는 “임금 체불은 1심까지 밀린 임금을 지불하면 처벌이 되지 않고 처벌도 체불액의 10% 수준에 그친다”며 “사업주가 임금을 제 때 지급해야 한다는 동기를 만들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장관도 이날 “소액이라고 고의적으로 체불한 사업주를 정식 기소해 ‘벌금만 내면 그만’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바꾸겠다”고 말했다.
이날 두 부처 공동 담화는 법무부도 노동 개혁의 한 역할 부처로서 등장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동안 노동 개혁은 임금, 근로시간, 노동조합 회계 강화 등 정책 과제로 고용부가 주도해왔다. 고용부 입장에서는 개혁의 한 축인 노사 법치주의 확립을 위해 수사·처벌을 담당하는 법무부와 긴밀한 협력이 필요했다.
고용부와 법무부의 임금체불 수사 협력은 이미 시작됐다. 임금체불로 구속된 사업주는 올해 9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 보다 3배 늘었다. 정식 기소 인원도 1653명으로 1.9배 증가했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악덕 사업주가 밀린 임금을 지급하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게 고용부 기대다.
이날 두 부처 장관의 직접 담화로 기존 대책 시행도 탄력이 붙게 될 전망이다. 고용부는 5월 상습체불 사업주에 대한 신용제재를 골자로 한 대책을 발표했다. 또 이달 시작한 임금체불 기획 감독을 내달 말까지 확대·시행한다. 검찰청은 임금체불 피해 회복을 위한 검찰업무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체불사건 전문조정팀을 운영하고 있다. 두 부처는 향후 임금체불 피해를 근본적으로 막을 제도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이 장관은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임금체불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며 “임금은 근로자가 일한 만큼, 제때, 정당하게 지급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