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강아지 ‘뚠이’를 입양했는데 동물 병원에서 내장형 칩으로 동물 등록을 권유했습니다. 손바닥만 한 강아지에게 시술한다는 게 거부감이 들어 목걸이로 등록했지만 바로 그날 목걸이를 잃어버렸습니다. 이때 동물 등록 방식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아예 창업을 했죠.”
2018년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서 홍채 인식 기술을 연구하는 대학원생이던 김태헌 파이리코 대표가 반려동물 개체 식별 기술 개발에 뛰어든 이유다. 파이리코는 비문(코 주변 무늬)·홍채 같은 생체 정보를 기반으로 반려동물 등록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김 대표는 “비문 기술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상용화 사례가 없는 기술이다 보니 개발이 쉽지 않았다”며 “공개 데이터베이스(DB)가 없어 강아지 코를 팀원들과 직접 촬영하러 다녀야 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후 솔루션이 고도화되자 이 기술을 전 세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표준’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020년 사람 생체 인식 분야 전문가인 한국인터넷진흥원 김재성 박사를 만나 3년 반에 걸쳐 기술 개발을 진행했다. 그 결과 지난달 파이리코가 개발한 ‘다중 바이오 인식 기반 반려동물 개체 식별 기술 표준’이 유엔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 회의에서 사전 채택되는 쾌거를 이뤘다.
그는 “파이리코 기술이 국제표준이 되면 비문 기반 개체 식별을 인정하지 않는 동물보호법 시행령 개정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동물보호법 시행령이 개정되면 몸에 칩을 심는 기존 방식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 대표가 강아지 ‘뚠이’를 통해 겪었던 거부감이 5년간의 노력으로 바뀔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번 표준 채택으로 파이리코는 관련 지식재산권 확보에도 확고한 우위를 선점하게 됐다.
그는 “올 하반기에는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 지정을 받아 비문 인식 기술로 반려견 신분증인 ‘개 민증’을 발급하는 시범 사업을 펼칠 계획”이라며 “경쟁 기업도 있지만 국제표준을 만들어낸 파이리코의 기술력은 업계 최고”라고 자신했다. 특히 그는 “창업을 시작했던 2018년만 해도 비문 인식 기술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많았지만 국제표준이 완성되고 실증 사례를 마련하는 과정을 거쳐 현재 시장의 반응은 180도 달라졌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파이리코는 대형 인증 플랫폼과 함께 농림축산식품부를 통해 파급력 있는 솔루션을 보급할 준비를 하고 있어 내년에는 본격적인 성장을 이뤄낼 것으로 전망된다. 또 비문 인식으로 등록되는 반려동물을 대상으로 유전자 검사 등 헬스케어와 연계한 서비스도 개발하고 있다. 단순히 동물 등록에 그치는 것이 아닌 개체별 이력 관리를 명확히 할 수 있도록 솔루션을 고도화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지난 5년간 신기술에 대한 의심을 걷어내는 과정을 거쳤다면 향후 5년은 신기술을 실제 활용하는 사례를 확산시킬 시기라 생각한다”며 “그동안 쌓아온 역량을 바탕으로 생체 인식과 반려동물 이력 관리에서 전 세계 1등 기업, 그리고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받는 반려동물 유니콘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