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에 일어난 삼례 나라슈퍼 사건은 새벽 전북 완주군 삼례읍의 나라슈퍼에 3인조 강도가 들어 잠들어 있던 할머니를 살해한 뒤 현금과 패물 등을 털어 달아난 사건이다. 이후 범인을 잡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 진범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재심을 통해 2016년에 이르러서야 무죄 판결을 받아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러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년들'(감독 정지영)은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와 경찰의 강압적인 공권력 행사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관할서에 새로 부임한 베테랑 형사인 황준철(설경구)에게 삼례 나라슈퍼 사건의 진범에 대한 제보가 들어오고 그는 소년들을 찾아가 제보의 신빙성을 확인한다.
긴가민가했던 초반의 마음과 달리 황준철의 눈앞에 펼쳐진 소년들의 얼굴은 범인들의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게다가 범인으로 지목됐던 소년들 중 한 명이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어려울 정도의 언어 능력을 가졌음에도 장문으로 자술서를 썼다는 점을 깨닫게 되며 그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과거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담당하며 누명을 씌웠던 담당자이자 책임 형사인 최우성(유준상)의 방해가 이어지고 황준철은 결국 권력의 힘에 나가떨어진다.
그렇게 16년이 지나고 감옥에 들어갔던 소년들도 어엿한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왔지만 그들은 여전히 억울한 시간 속에 갇혀 살아간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였던 윤미숙(진경)과 소년들은 황준철에게 찾아와 재심을 위해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이 사건으로 인해 좌천당했던 황준철은 고민을 반복하지만 결국 자신의 신념대로 움직이며 그들을 억겁의 시간에서 꺼내기 위해 다시금 용기를 낸다.
'소년들'에서는 누구보다도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경찰이 폭행과 협박으로 누명을 씌우고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인생을 희생시키는 과정이 매우 가혹하게 표현된다. 소년들은 맞고 울고 버려지지만 어떠한 어른도 그들을 지켜주지 않는다. 개인보다 조직이 우선시되고 이해보다 타협이 더 쉽다고 여겼던 그 당시의 시대적인 단상을 엿볼 수 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들의 누명에 대해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으며 엔딩이 주는 카타르시스에도 불구하고 진범의 사과나 변명은 그다지 마음에 닿지 않고 씁쓸한 잔상만을 남긴다. 하지만 그러기에 더욱 그 속에서 용기를 가지고 시련을 헤쳐나가려 고군분투하는 황준철의 모습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권력이란 때론 무섭고, 때론 유혹적인 존재다. 하지만 그 권력을 쟁탈하는 것이 아닌 권력에 맞서 싸우고 투쟁하는 그의 모습은 '정의는 승리한다'는, 아주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작은 기적에 대해 다시금 희망을 가지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