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004170)그룹 부회장이 그룹 컨트롤 타워인 경영전략실에 “조직, 시스템, 업무 방식까지 다 바꿔라”라고 지시했다. 그룹이 올해 9월 전체 대표이사 40%를 교체하는 인적 쇄신을 단행한 데 이어 이번에는 정 부회장이 직접 프로세스 혁신을 주문하고 나선 것이다. 국내 유통 시장이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실적 성장세가 정체 국면에 빠져들자 ‘바꾸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표출된 것으로 풀이된다. 신세계그룹 전반에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정 부회장은 20일 열린 경영전략실 전략회의에서 “그 동안의 역할과 성과에 대해 무겁게 뒤돌아봐야 할 시기”라고 운을 떼며 경영전략실이 과거 일해 온 방식을 질책했다. 그러면서 지금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하고 혁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새로운 경영전략실은 각 계열사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군림하는 조직이 아니라 그룹 내에서 ‘가장 많이 연구하고 가장 많이 일하는 조직’이 돼야 한다”며 “경영전략실이 그룹의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조직이니만큼 그에 걸맞게 책임 또한 가장 무겁게 진다는 인식을 갖고 업무에 임해 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신세계그룹은 17일 계열사의 ‘성과 총력 체제’를 안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기존 전략실을 경영전략실로, 전략실 산하 지원본부와 재무본부를 각각 경영총괄과 경영지원총괄 조직으로 개편했다. 컨트롤타워 지휘봉은 7년 간 신세계프라퍼티 대표 직무를 수행하며 새로운 유통 포맷인 스타필드를 시장에 안착시킨 임영록 사장에게 맡겼다.
이날 회의에서 정 부회장이 가장 강조한 키워드는 다름 아닌 ‘변화’였다. 그는 “일하는 방식이 변화해야 한다”며 “스스로는 변화하지 않고, 변화를 요구만 한다면 그 뒤를 따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어 “경영전략실부터 솔선수범해 변화의 선두에 나설 때 그룹 전체의 변화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며 “경영전략실 뿐만 아니라 그룹 전체가 함께 변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영전략실을 필두로 그룹 전체에 강도 높은 쇄신을 주문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조직과 시스템 변화도 주문했다. 정 부회장은 “그룹의 안정적인 지속 성장을 위해 경영전략실의 조직 운영과 의사 결정은 가장 합리적이고 명확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사람이 아닌 시스템을 바탕으로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조직 구성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궁극적으로 경영전략실이 예측가능한 경영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점도 강조했다. 컨트롤타워로서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고 각 계열사가 갖고 있는 잠재적 리스크 요인을 사전에 파악해 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정 부회장이 “마누라,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는 고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1993년 ‘신경영 선언’을 연상케 하는 발언을 한데는 ‘밀리면 끝이다’라는 위기감이 고스란히 묻어 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유통 시장의 핵심 축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주력 계열사인 이마트(139480)와 신세계 모두 이렇다 할 성장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변화의 지향점은 ‘오프라인 본업 경쟁력 회복’이지 ‘온라인 중심 회사로의 전환’은 아닐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룹은 최근 본업 경쟁력 회복이라는 문구를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며 “정 부회장이 지난해 신년사를 통해 목표로 제시한 ‘오프라인조차 잘하는 온라인 회사’와는 결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임 사장을 컨트롤타워 수장 자리에 앉힌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